지난 기획/특집

[나의 사순 이야기] (끝) 김태욱 신부 / 윤명희 수녀

입력일 2019-03-19 수정일 2019-03-19 발행일 2019-03-24 제 3137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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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교회 내 각계각층의 특별한 사순 이야기를 듣는다. 이번 주에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김태욱 신부와 살레시오수녀회 윤명희 수녀가 사순 시기 신앙체험을 나눈다.

‘나의 사순 이야기’는 이번 주로 끝을 맺지만 남은 사순 시기가 주님을 더 가까이 느끼는 저마다의 이야기들로 채워지길 희망해본다.

■ 고통이 아닌 기쁨의 사순 시기를

- 김태욱 신부(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사순이면 은총표를 받으려 평일미사에 즐겁게 참례하던 어린 시절 기억이…

사순은 고통스런 잿빛이 아닌 부활을 기다리는 기쁨의 하얀 시기가 돼야

저에게 사순절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은총표와 묵주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본당에서 사순 시기 동안 평일미사에 나오는 학생들에게 은총표를 한 장씩 주었습니다. 저는 사순 시기를 거룩하게 보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은총표 모으는 재미로 매일 저녁 성당에 갔습니다. 하루는 신부님께서 독서대에서 강론을 하시지 않고 무선마이크를 잡고 신자석 앞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러곤 신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제자들이 잠에서 깨어나 예수님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을 봅니다. 그 두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신부님께서는 저를 일으켜 세우시고는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큰 목소리로 “모세와 엘리야요”라고 대답했더니 신부님께서 그 자리에서 본인 주머니에 있던 은총표 2장과 5단 묵주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날 강론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예언서를 대표합니다. 그러니까 이 둘은 구약성경 전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기억납니다. 은총표 2장의 기쁨과 함께 새겨진 뚜렷한 기억입니다. 학원 다녀와서 쉬는 시간을 줄여 매일 미사에 참례한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조금은 고달픈 일이었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은총표를 보며 부활절 후 다가올 은총시장을 고대하며 즐겁게 미사에 참례한 기억이 있습니다.

수도자, 사제라고 해서 사순절을 특별히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승의 생활은 언제나 사순절을 지키는 것과 같아야 하겠지만 이러한 덕을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에, 이 사순절 동안에 모든 이들은 자신의 생활을 온전히 순결하게 보존하며, 다른 때에 소흘히 한 것을 이 거룩한 시기에 씻어내기를”(수도규칙 49,1~3)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순절에 특별한 기도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절제를 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는데, 다만 특별한 점이 있다면 아빠스(수도원장)에게 자신이 바치고자 하는 것을 알려서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지켜져서 재의 수요일 전에 모든 수도자들이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절제와 고행, 선행, 특별한 기도, 영성서적 등을 적어서 아빠스의 동의를 얻습니다.

수도원에 입회한 후 처음 맞이하는 재의 수요일이었습니다. 입회 전에는 재의 수요일에 그나마 세 끼 중 편할 때 한 번을 정해서 금식했지만, 수도원에선 일괄적으로 아침식사를 금식합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겠지만 사람이 어쩌다 자의로 한 끼 정도는 그냥 굶어도 그리 배고프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의무적으로 굶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배고픔을 더욱 심하게 느낍니다. 평소 아침에 빵 한 조각, 사과 한 조각씩 거의 안 먹다시피 했는데도, 그것마저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온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미사를 마친 후 습관적으로 식당에 들어갔다가 텅 비어있는 식당을 한참 바라보고는 냉수만 들이켜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지원자들이 지내는 숙소로 돌아와 보니 휴게실에 초코파이가 빨간 포장지 자태를 뽐내며 얌전히 놓여 있었습니다.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초코파이에 눈길이 가는 것을 보니 내가 정말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릴 적 은총시장을 고대하며 고되고 지루한 평일미사를 견디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들어 하는 게 부활을 기다리며 스스로 기쁜 마음으로 사순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입회한 지 10년이 지나도 아직도 사순절이 되면 어떤 실천을 해야 할 지 고민이고, 사순절 내내 실천사항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서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고통스런 잿빛 사순절이 아닌 기쁨의 하얀 사순절을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총시장을 고대하며 고단함을 이겨냈던 순수한 어린이처럼, 초코파이 하나에 몹시 괴로워하기보다 내가 평소에 즐기던 바를 줄이고 이웃과 함께 나누며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것, 이것이 그날 내가 얻은 조그마한 결심입니다.

■ “고기를 끊겠습니다”

- 윤명희 수녀(실비아·살레시오수녀회·구립 신월청소년문화센터 센터장)

삼겹살을 너무나 좋아하던 내가 금육을 선언했다

왜? 나의 단절을 통해 창조질서를 보존하고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서…

그리고 10년 넘게 고기 없는 식사를 통해서 나만의 환경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연륜이 깊어지고 겸손해지며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하지요. 하지만 젊었을 때의 열정에 비할 수 있을까요? 제가 훨씬 더 젊고 순수했던 시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뛰어들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진짜야?” 동기 수녀가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습니다.

“수녀님이?” 언니 수녀님도 놀라 물었습니다.

“네, 오늘부터 쭈욱~”

“사순 결심치고는 너무 근사한데. 삼겹살 킬러가.”

사순절이면 어김없이 세우는 공동체의 영적 결심과 물적 절제, 그리고 개인 결심들. 나는 과연 맛있는 고기들을 끊고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요?

삼겹살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누군가 밥을 사준다면 삼겹살이길 원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음식, 공동체 또한 삼겹살을 구울라치면 “실비아 수녀님, 오늘 식사 시간에 있지?” 하고 확인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내가 금육을 선언하다니요. 그래도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겸손히 사람이 되시고 고난과 수난의 길을 가시는 그분과의 40일을 어찌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며 지낼 수 있겠습니까.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사순절을 거룩히,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지향으로 ‘창조질서 보존’을 위해 사순 시기를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금육을 결심하고 난 후 고기를 먹을 좋은 기회들은 왜 자꾸 생기던지요. 지글지글 노랗게 익어가는 맛있는 고기들을 바라보면서 상추쌈만 먹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녔습니다. 시각, 후각을 비롯해 나의 모든 오감이 “왜?”라고 물었습니다.

격려의 말이 있는가 하면, “무슨 수녀가 음식을 골라먹어?”라는 핀잔도, “그러다 아프면 어쩔래?” 등등. 무엇보다 제 입이 고기를 너무 원한다는 게 문제였지요. 예수님의 수난과 비움을 묵상하는 시기에 고기가 뭐라고, 참 우습지요?

여러 가지 나의 생물학적 본성을 제어해줄 이성적 논리들을 찾아 무장을 시작했습니다. 알고 있는 지식을 강화해가며 육식이 사라진다면 많은 환경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자꾸 되뇌었습니다. 축산업은 산림파괴의 가장 주된 원인입니다. 지구의 허파라 일컫는 아마존 산림의 90%가 소떼 방목과 가축용 사료작물 재배를 위해 사라진다는 사실, 사막화로 이어지는 전 세계 토양 침식의 50% 이상이 가축 때문이라는 것, 축산의 부산물로 인한 온실가스 문제와 수질오염, 물 부족 시대에 인류가 사용하는 물의 많은 부분이 육식 산업을 위한 것이라는 것 등등. 내가 육식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이 모든 것에 앞서 왜 나는 이 사순절에 금육을 선언하는가? 그렇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사랑하셨을 모든 피조물과 피조물들을 위해 만드신 자연 질서를 조화롭게 보존하는데 나의 단절을 통해 예수님께 사랑고백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느님으로서 그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 유한한 인간이 되어 오셔서,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모진 수난과 고통을 참아 받으신 그분께, 저는 금육으로서 창조질서 보존이라는 꽃다발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40일간의 금육에 성공을 했고, 그 후로도 저는 10여 년째 고기를 먹지 않고 있습니다. 고기 없이 간소하기 만한 나의 식사는 여전히 맛있고 행복하며, 젊지 않은 나이를 살아감에도 특별한 지병 없이 건강합니다. 고기보다 더 좋은, 나를 보살피는 여러 방법들을 실행할 힘이 생겼으니까요. 마음 안에는 늘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채식주의라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누군가 물으면 “그저, 뜻하는 바 있어 하는 나만의 환경운동입니다”라고 작게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