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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렌즈로 세상보기] ‘핵 문제, 어떻게 봐야할까’

정리 우세민 기자
입력일 2019-03-19 수정일 2019-03-19 발행일 2019-03-24 제 313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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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생명과 양립할 수 없어… 신앙적 결론은 ‘탈핵’  
교회, 명백한 창조 보전의 원칙 고수
역대 교황들도 핵 위험성 꾸준히 경고
핵발전소 인접 주민 대부분 피폭 상황
남 아니라 ‘우리’ 문제로 인식하고
하느님 창조물 보전할 방안 마련해야

‘탈핵’을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2017년 7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열렸다. 공론화위원회는 같은 해 10월 ‘원전 건설 재개’를 최종 권고로 내놨다. 지난 2월 1일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4호기 운영 허가를 의결했다. 또 2월 14일 법원은 신고리 5·6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측 청구를 기각하면서 원전 건설허가를 취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핵발전소를 두고 사회의 갑론을박은 계속되고 있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핵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교회 가르침에 근거해 활동하는 핵 관련 전문가들, 원전 인접지역 주민들과 함께 핵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사회: 우세민 편집팀장

◎일시: 3월 16일 오후 2시

◎장소: 대구대교구 경주 양남성당

◎토론: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준한 신부, 영덕핵발전소범군민연대 박혜령(안젤라) 대외협력국장, 경주 월성원전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황분희 부위원장·신용화 사무국장

핵 관련 전문가들과 원전 인접지역 주민들이 3월 16일 경주 양남성당에서 핵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월성원전. 경주 월성원전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신용화 사무국장과 황분희 부위원장,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준한 신부, 영덕핵발전소범군민연대 박혜령 대외협력국장, 본지 우세민 편집팀장.(왼쪽부터) 사진 박원희 기자

■ 정부의 탈핵 방향

-우세민 편집팀장(이하 우 팀장) :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뒤에 한국 주교회의는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2013년)이라는 소책자를 펴냈죠. 이 책에서 주교회의는 “닥쳐올 위험을 모르고 당장의 풍요로움에 만족하는 성경 속 어리석은 부자(루카 12,20 참조)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탈핵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결정부터 최근 원전 건설허가 부분까지는 공약과 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박혜령 대외협력국장(이하 박 국장) :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우리나라에도 많은 사람들이 핵의 위험성을 알게 됐고, 핵발전소 폐쇄를 위해 힘을 모아왔습니다. 문 대통령도 대선 당시 건설 중이던 핵발전소를 백지화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죠. 그런데 현재까지는 공약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건설 재개를 결론으로 냈을 때 주요한 이유가 ‘매몰비용’입니다. 원전 건설이 중단됐을 때 이미 들어간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인 것이죠. 경제적 측면에서 이 문제가 검토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사회적 검토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준한 신부(이하 김 신부) : 한국교회는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핵무기와 핵 발전을 불가피한 ‘필요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적 상황’에서만 그나마 설득력을 갖는다.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악영향을 가져오는 것은 결코 예외적 상황이 될 수 없으며, 반드시 그리고 시급히 극복해야 할 현대의 ‘문제’일 뿐이다.”(124항) 핵에 대해 교회가 심각하게 문제를 삼는 것은 생명입니다. 이것은 절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교회는 핵에 대해 타협 없는 명확한 원칙을 내세웠기 때문에, 핵발전소 증설에 대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 한국의 핵 발전 상황

-우 팀장 : 전 세계적으로 수명을 다했거나 안전의 이유로 문을 닫은 핵발전소가 140여 기입니다. 폐쇄된 핵발전소의 평균 운전기간이 24년이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가동한 지 25년이 지난 노후 핵발전소들이 꽤 된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핵 발전 상황은 어떠한지 말씀해주십시오.

▲박 국장 : 2017년 영구정지를 선언한 고리 1호기는 1978년에 건설됐으니 40년 가까이 가동됐습니다. 그 이외에 가동되고 있는 핵발전소가 영광, 부산, 울산, 경주, 울진의 5개 지역에 24기가 있어요. 외국의 경우는 설계수명을 절대적으로 두지 않고, 10년마다 발전소 상황을 점검하며 그때그때 가동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리 1호기나 월성 1호기가 30년, 고리 2호기부터는 40년, 최근에 지어진 핵발전소의 경우는 60년입니다. 건설 재개를 결정한 신고리 5·6호기도 60년이죠. 결국 국내 핵발전소는 주요부품을 교체해 설계수명을 넘어선 수명연장 조건을 억지로 만들어왔습니다.

■ 핵 기술에 대한 교회 입장

-우 팀장 : 핵 발전을 찬성하는 분들도 많이 있으시죠. 그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에너지 대안이 바로 핵발전소라고 합니다. 국내 핵기술이 세계적 수준이며, 다른 나라에 수출할 만큼 완전하게 건설됐기에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방사선 문제도 건강에 아무런 위험이 없는 수준이라고 하고요. 가장 친환경적인 청정에너지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핵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요?

▲김 신부 : 교회 가르침은 명백합니다. 핵은 인류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위배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핵 없는 세상을 위해 당장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께서는 회칙 「어머니요 스승」(1961년)에서 핵무기의 위협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이후에도 교황님들은 사회교리에 대한 문헌을 반포하시면서 핵 문제를 빼놓지 않고 언급하십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도 회칙 「노동하는 인간」(1981년), 「사회적 관심」(1987년), 「백주년」(1991년) 등 문헌 대부분에서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제시하는 시대적 징표를 이야기하면서 핵무기의 위험, 핵 기술의 심각함에 대해 꼭 언급하셨습니다. 비로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최초의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2015년)를 내놓으십니다. 교황님은 생태회칙에서 핵에너지, 핵폐기물, 핵무기 등 핵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시면서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까?”(160항)라고 묻습니다. 2015년 3월에는 교황청을 방문한 일본 주교단에게 “인간은 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만들어 스스로 파멸을 부르려 하고 있다”며 “핵 발전은 인간이 주인공이 돼 자연을 파괴한 결과의 하나”라고 비판하셨습니다.

결국 교회의 가르침은 핵이 어떤 형태로든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경제적인 관점에서 핵 발전을 언급하는 순간, 우리의 신앙에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 머무는 것은 돈이나 권력과 같은 세상 가치를 뛰어넘고, 그것이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생명, 하느님의 주권, 창조의 신비 앞에서 세상 그 무엇도 대등할 수 없고, 다수결로 결정될 수도 없습니다.

■ 구체적 피해 사례

-우 팀장 : 이 자리에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이 계시는데요. ‘경주 월성원전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를 2015년부터 구성해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 홍보관 앞에서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속사정을 한 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황분희 부위원장 : 저희는 핵발전소 최인접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핵발전소와 914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914m는 현행 원자력안전법에서 정한 제한구역에 해당되는 거리입니다. 월성원전은 중수로이다 보니 방사선 노출 문제가 심각합니다. 숨을 쉬는 사이에 우리는 방사능에 피폭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을주민 상당수가 갑상선암을 비롯해 대장암, 위암, 췌장암, 백혈병 등 진단을 받았습니다. 2016년에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감식센터에서 검사를 했는데, 검사 대상자 모두의 몸속에서 방사능 물질 삼중수소가 검출됐습니다. 심지어 만 4세 아이도 포함됐어요. 정작 이곳을 떠나려 해도 이주할 수 없습니다. 핵발전소 인근지역이라 땅이든 집이든 매매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결국 우리는 이곳에 발이 묶인 채 우리뿐 아니라 자식, 손자들이 방사능에 피폭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죠.

▲신용화 사무국장(이하 신 국장) : 방사능 물질 검사에서 우리 아이들 몸에도 방사능이 검출됐습니다. 막내 아이가 “엄마, 나 어떻게 해”라고 묻는데, 해줄 답이 없어서 “그냥 물 마셔”라고 할 수밖에 없었어요. 세포분열이 왕성한 아이들에게는 방사선에 의한 유전자 손상 피해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로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모든 국민들이 핵의 위협을 자각하면 좋겠습니다.

■ 교회 노력은?

-우 팀장 : 정부의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교회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교회가 현재 펼치고 있는 노력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 신부 : 한국교회는 그동안 나름대로 핵 문제에 대응해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전에 핵발전소가 주로 모여 있는 동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동해안 탈핵천주교연대’를 조직했습니다. 2015년에는 전국적인 조직으로서 ‘탈핵천주교연대’를 출범하게 됐고, 2016년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가 설립돼 핵 문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한일주교교류모임에서도 꾸준히 핵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탈핵도보순례라든지 생명평화미사 등 다방면에서 핵 문제를 알리고 교회 입장을 전파하는데 교회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모라랍니다. 주교회의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의 탈핵활동 방안은

-우 팀장 : 앞으로 핵 발전과 관련한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까요? 또 우리는 앞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각자 희망하는 바를 제안해주시길 바랍니다.

▲박 국장 : 우리는 이제껏 산업과 경제발전을 사회적 가치의 가장 중심에 놓았는데요. 이제 우리 사회는 새로운 방향으로 가치를 세우는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핵발전소가 가동되면 발생되는 고준위 폐기물이 국민들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방사능보다 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짧게는 10만 년, 길게는 100만 년 밀폐된 공간에 보관해야 하는 겁니다. 과연 10만 년 뒤에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쓰고 있을지도 걱정입니다. 이것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적어놓아도 후대에까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언어학자들이 모여서 고준위 핵폐기물 보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은 답이 없는 문제죠. 무한대로 핵폐기물을 양산하는 상황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먼 미래의 후대까지 핵폐기물 위협을 전가하면서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이 마땅한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중심의 이기적인 생각은 접어둡시다.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핵 문제는 조속히 단호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신 국장 : 핵발전소 인접지역 주민들은 여유가 없습니다. 당장 방사능이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중입니다. 우리가 왜 이러는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힘이 되실 수 있게끔 작은 움직임이라도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수원 종사자를 탓하는 게 아닙니다. 그분들도 같이 논의하고 같이 가야할 분들입니다. 그분들과 그 가족들이 받을 부담도 논할 수 있는 탈핵 활동이 됐으면 합니다.

▲김 신부 : 특별히 신앙인들은 지금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희생과 극기를 실천하는 시기입니다. 천주교 묘지 앞에는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핵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핵발전소에 인접한 나아리 주민의 고통이지만, 내일은 멀리 떨어진 우리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해당사자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문제가 단순히 한 일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 팀장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월성원전 인접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던 예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이분들의 생명권과 환경권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이분들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보전하는데 다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정리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