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밟으며

조희철(스테파노) 명예기자
입력일 2019-03-19 수정일 2019-03-19 발행일 2019-03-24 제 3137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뤼순 감옥 전경.

※ 가톨릭신문 명예기자들이 삶과 신앙 속에서 얻은 묵상거리를 독자들과 나눕니다.

동북아 복음화를 위한 기도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이루어진 자리다. 서울 신내동본당(주임 이기우 신부)이 주최한 안중근 의사 발자취를 쫓는 순례에 참가해 중국을 찾았다.

서울을 떠나 대련에 도착하는데 불과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두고 이토록 오랜 시간을 모른 채 살아왔는지 우리의 정성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안중근 의사를 기리고 닮아가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역사의 현장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점심식사를 하고 아파트에 자리 잡고 있는 한인공동체를 찾았다. 너무나도 소박하고 아담하게 마련된 교회는 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짜릿한 느낌을 느끼며 이기우 신부님께서 집전하신 미사 성제는 나로 하여금 깊은 통회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왜 이토록 지내야만 하는 것일까? 중국에서의 첫 미사. 동북아 평화에 대한 소신 넘치는 강론 말씀 속에 신자들의 기쁨 어린 눈빛을 느끼면서 미사는 진행되었다.

다음 날 일찍 우리 일행은 뤼순을 향해서 길을 재촉했다. 한인공동체의 신자들이 일일 피정으로 진행되는 일정에 함께 하게 되었다. 여름에는 동북3성 피정을 간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생각과 말로만 안중근이며 동북아 복음화며 떠들고 있는데 이곳 교우들은 이토록 열망을 하며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안중근 순국 기념 성당 건립을 추진하며 동양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로서 면모를 가지고 자랑스럽게 운영되고 있는 것에 가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보다 먼저 뤼순 공소에서 미사가 집전됐다. 한국인으로서는 이제껏 한 번도 모셔본 적이 없는 미사가 공안국의 특별한 배려로 처음 거행된 것이라 하니 그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신자들과 중국 신자들이 한자리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감격 그 자체였다.

성가를 중국어와 한국어로 각각 부르면서 독서와 복음은 한국어로 하고 이 신부님의 강론은 전영부 신부님께서 직접 통역을 해주셨다. 감격스런 강론 속에 자꾸만 목이 메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 이제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작은 시작의 첫 번째 발걸음을 디디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뤼순 감옥을 찾아 그분께서 계셨던 곳을 보았다. 그분의 사형이 집행되었던 사형장도 보았고, 간장통에 실려 산속에 묻히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 가슴속에 안중근 토마스 의사가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모두가 동북아 복음화를 위해 앞장서야 할 것이며 동양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크게 띄어야 할 것이다.

우리 일행은 하얼빈을 거쳐서 안중근 기념관에 들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얼빈역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소는 허락을 받지 못해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일본군이 저지른 참상을 보기 위해 우리 일행은 731부대 전시관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동북아 복음화와 동양평화를 위한 기도를 더욱 열심히 올릴 것을 다짐해본다.

조희철(스테파노)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