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시련이 지나가는 자리 / 임나라

임나라 (아녜스) 아동문학가
입력일 2019-03-19 수정일 2019-03-19 발행일 2019-03-24 제 313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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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4일, 예비신자 교리 교육을 재수한 끝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받은 이튿날 아침, 눈 감은 채 묵상하던 중에 신비스럽기 그지없는 어떤 모습을 보았습니다. 잿빛 하늘에서 커다란 꽃송이들이 하얀 눈처럼 셀 수도 없이 무리 지어 천천히 너울너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크고 황홀한 꽃송이들은 하나하나 내려 지붕을 덮어 가고 있었습니다. 언덕 아래쯤 보이는 마을 지붕들은 크나큰 꽃들로 덮여 갔습니다. 그 꽃송이들은 하얀 장미꽃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니 6월의 오렌지색 아침 햇살은 눈부셨고, 창문 밖엔 부드러운 바람만이 나뭇잎들을 살랑이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이들에게 잠시 동안 있었던 이 일을 이야기하면 “특별한 은사를 받았나보다” 하며 저를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그 꽃들은 아마도 내게 오시는 성모님이 아니셨을까?’ 하며 가끔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심이 매우 미약해 저는 자주 혼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쑤였습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베드로, 시니컬한 성격의 안드레아, 말 많은 야고보, 주님의 성흔을 만져 봐야만 한다던 의심 많은 토마스, 세리 마태오, 주님을 팔아넘긴 유다의 최후를 보며 저도 몰래 마음 깊이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당대의 힘없는 아웃사이더로만 여기며 주님께서 감추고 계신 뜻을 깊이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말입니다.

이렇듯 확고한 신앙심을 갖지 못하고 오락가락할 때였습니다. 저는 지인들과 함께 산골짜기에 작고 소박한 집 한 채씩을 짓기로 했습니다. 집을 짓는 중에 여럿이서 의기투합해 집을 짓겠다는 꿈을 현실로 옮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영원히 닿지 않는 평행선 같았습니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은 채 시련의 길에 서서 오도 가도 못하는 날들이 계속됐습니다.

그즈음부터였습니다. 심리상담 전문가이신 한 신부님의 글을 읽으며 시련의 과정을 어떻게 버티고 이겨 나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신부님께선 피하기 어려운 시련을 부득이하게 맞아야 할 때면 “맞장 뜨는 심정으로 맞서야 한다”며 그 버티는 방법을 일러 주셨습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주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같은 심리의 변화를 겪게 된다면서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이제 시련에 면역력이 생겼고, 버티는 힘도 강해진 것 같습니다.

‘삶’은 결코 사람을 한 곳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햇살과 바람과 함께 파도타기를 하며 지내게 하는 듯싶습니다. 이럴 때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겠습니까. 그냥 흔들리며 사는 것이지요.’ 주님은 모난 돌들을 다듬어서 쓰시는 분입니다. 어떤 비바람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매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시라는 걸 시련이 지나가는 자리에 설 때마다 주님은 제게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Peace be with you!’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나라 (아녜스)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