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한반도 평화와 그리스도의 길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3-19 수정일 2019-03-19 발행일 2019-03-24 제 3137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채택 없이 끝나고 나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혼돈에 빠져 있다. 미국은 연일 북한의 선비핵화가 이뤄져야 대북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이를 기정사실화 하려 한다. 북한은 북한대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이야말로 불가역적 비핵화라고 주장하고, 북미 대화의 전면 재검토와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재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상응 조치를 압박하고 있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러한 북한과 미국의 반응에 대해 아직은 양측 모두 협상의 판 자체를 깨려고 하지는 않으면서, 향후 협상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기싸움을 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분석보다 훨씬 위태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어떤 의문도 없다”고 하면서 “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미군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즉 현재 북미 관계가 혼돈에 빠져들었지만 적어도 남북의 군사적 긴장 고조에 대해 관리하겠다는 미군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국내에서는 남북 협력을 통한 북미 관계 중재를 지속하겠다는 현 정부의 천명에 대해 지지와 비판이 혼재돼 나타났다. 사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찬반이란 지극히 당연한 일상사다. 그렇지만 자신의 소속 정파나 정당을 떠나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북한과 미국이 2017년과 같은 극한적인 대립과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가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남북의 교류·협력이나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방법론에 대한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이견이 있을 수 있고, 반대를 표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긴장 고조에 대해서는 한마음으로 반대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은 중국과, 한국은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인 조건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은 군사적 패권을 둘러싼 글로벌 차원의 충돌로 발전할 수도 있는 문제다. 세계사에서 우발적 충돌이 심각한 전쟁으로 발전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제 우리 정치인들이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진다”(야고 3,18)는 말씀을 따라,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정치인들이 여야를 떠나 한마음으로 북한과 미국을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설득할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에페 2,17)하신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