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헤로데의 누룩, 권력의 덫을 조심하여라! / 오세일 신부

오세일 신부 (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일 2019-03-19 수정일 2019-03-19 발행일 2019-03-24 제 313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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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정치판이 미세먼지만큼이나 혼탁하게 느껴질 적이 많습니다. 공자는 정치란 올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이라 했는데, 하느님께서 보시는 올바른 정치와 권력의 본질에 관해서 성찰해 봅시다.

정치란 본래 인간이 활용하는 권력과 지배의 작동 방식을 뜻합니다. 하지만, ‘권력’이란 실제로 국회와 노사투쟁의 현장뿐 아니라 부부싸움과 자녀와 대화, 교회와 공동체 등 인간이 만나서 갈등을 겪는 모든 일상의 현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지요.

현대 사회과학이 논하는 권력(power) 개념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막스 베버의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힘 있는 개인과 집단’에 초점을 둔 이 관점은 현실정치를 잘 분석해 주지만 온갖 갑질과 독재, 부패한 위계체제마저도 정당화해 주는 위험이 있지요.

둘째, 한나 아렌트가 제기하고 현대 네트워크 시대에 보다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관점으로서 ‘네트워크의 집합적 역량으로서 공동과업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뜻합니다. 이는 개개인이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 안에서 자유롭게 소통하고 공감하는 ‘집합지성’의 역량을 강화합니다. 이러한 네크워크는 기업체 간 공동프로젝트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데, 열린 소통의 네트워크는 관료제적이거나 폐쇄적인 위계조직에서는 작동하지 못하며, 오로지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폐쇄성에 빠질 위험도 상존합니다.

셋째, 성경에서 제시되는 예수님의 관점으로서 ‘권력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며, 모든 권력은 결코 군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낮은 이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같은 ‘선한 권력’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존엄함을 온전히 되찾도록 ‘힘을 주며 동반하는 관계’를 구현함으로써 헤로데의 누룩과 같은 ‘권력의 덫’을 경계합니다.

그런데 권력이란 선거와 투표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모든 ‘의사 결정 과정’에서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가정, 직장, 교회 등 공동체 안에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말투와 표정, 대화와 침묵 등을 읽어보면 누구의 뜻과 의지가 강하게 관철되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자녀의 생일에 자녀가 좋아하는 걸 먹으러 가는 결정들을 하시지요? 어린이 생일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곱창전골 집으로 억지로 데리고 가지는 않지요? 선한 권력을 결정하는 것은 이렇게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커서 대학에 가려고 하면, 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전공으로 결정하기보다 부모의 뜻을 우선하는 결정을 밀어붙이나요? 본인이 항상 옳고 정당하다고만 우기며 성찰할 줄 모르는 권력의 덫에 빠지면, 지배와 소유의 유혹이 독버섯처럼 자라납니다.

영성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단초인 ‘내어맡김’(surrender)이란, 단지 하느님의 자리를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고상한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자리에서 자기의 의식 안에 스며 있는 성령의 움직임 안에서, 내가 누군가의 뜻과 욕망, 의지를 인식하고 따르고자 하는가를 식별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그것이 권력과 결정과 관계되는 한, 내어맡김을 ‘행하는 것’ 역시 매우 실제적이며 정치적인 차원을 항상 내포합니다.

그렇기에 가장, 사장, 수도원장, 주임사제, 주교, 교구장 등 남들보다 높은 권한을 가진 위치에 있는 분이라면, 아랫사람들을 경시하지 말고 가난하고 취약한 타인들의 갈망과 탄원을 헤아려 경청하는 ‘귀의 사도직’을 수행하라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강조하십니다. 사실, 성령께서 이끄시는 손길에 민감해져서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길을 걷지 못하면, 제아무리 높은 자리로 올라가도 ‘권력의 덫’에 걸려 하느님의 눈에는 첫째가 꼴찌가 되기 쉽습니다.

사순 시기에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느님 백성 앞에서 군림하지 않고 섬기며 봉사할 수 있는 회심의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치인들은 민주사회에서 국민을 섬기는 종(civil servant)의 직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권 쟁취 혹은 유지’를 목적으로 당리당략에 묶이면 부패하게 됩니다. 온갖 거짓, 파벌과 분열로 국민을 기만하는 권력은 ‘헤로데의 누룩’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정치인과 공직자들은 역사와 민중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공동선에 기반한 ‘선한 권력’을 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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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신부 (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