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나의 사순 이야기] 김지석 주교 / 권길중 전 평협회장

입력일 2019-03-12 수정일 2019-03-13 발행일 2019-03-17 제 313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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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시기,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참회와 희생, 극기, 회개와 기도로 주님의 거룩한 부활을 준비한다. 이에 본지는 교회 내 각계각층의 특별한 사순 경험을 통해 신자들에게 사순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두 주에 걸쳐 마련한다. 먼저 전 원주교구장 김지석 주교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권길중 전 회장의 사순 시기 신앙체험을 전한다.

■ 나를 비우는 사순, 화해 - 김지석 주교(전 원주교구장)

소신학교 시절 사순 시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지금은 조금 완화됐지만, 당시에는 단식재를 엄격하게 지켰다. 단식을 하는 김에 학생들에게 공복에 먹는 회충약을 한 알씩 나눠줬는데, 이것이 학생들을 참 힘들게 했다. 가뜩이나 단식을 지키고 있는데 회충약 때문에 부지런히 화장실을 가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사순 시기, 특히 성삼일에는 평소보다 전례도 많아서 성금요일 즈음에는 하늘이 노랗게 보이곤 했다.

대신학교에 올라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성무일도를 노래로 바치니 기도시간이 하염없이 길어져 더 곤혹스러웠다. 나를 포함해서, 신학생들은 성무일도를 노래하는 중에도 화장실을 가곤했다. 그러다 파스카 성야를 지내고 잔칫상처럼 푸짐한 식사에 ‘진짜 부활이구나’ 하는,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물론 영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으로 그런 것이었지만.

지금이야 사순 시기의 금육재와 단식재도 조금 완화됐고, 약도 좋아져서 예전처럼 설사를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신학교에도 그런 일은 없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다만, 이후로도 성주간만 되면 그렇게 고생해가며 힘들게 지켜온 전례 안에서 사순 시기의 의미를 곱씹게 되곤 했다.

단식의 의미는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옛 신학교의 학생들처럼 설사까지 해가며 극단적으로 비울 것까지는 없겠지만, 음식을 끊고 속을 비우면서 내 욕심을 비워내는 것이 단식이다. 단식재가 그저 자기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하고 식비를 아껴서 돈을 모으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과거와 교회의 상황이 변하고, 전례가 변하기는 했지만 사순 시기의 정신은 변함이 없다. 사순 시기에 고신극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자기 통회와 회개다. 회개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들어내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건데, 그게 바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랑을 나누는 일을 거창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사순 시기에는 뭘 끊고, 크게 무언가를 해서 희사하고 이런 것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사순 시기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해’하는 일이다.

사랑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부터 하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려면,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다음은 자기 형제와 가족이고, 그 다음에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예수님도 예물을 드리러 갈 때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오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서 성당에 나와 ‘사랑, 사랑’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니 기도도 자선도 모두 화해에 포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 중 누구 한 사람과 화해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순 시기를 잘 지낸 것이다. 화해와 용서. 쉬운 것 같지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이건 평신도뿐 아니라 수도자나 성직자도 그것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주교가 된 이후, 직무상 한 신부를 야단칠 일이 생긴 적이 있다. 주교라는 직분의 입장에서는 해야 할 소리를 한 것이고, 야단쳐야 할 부분을 야단친 것이다. 하지만 그 신부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힘든 일이고, 그 일로 그 신부와 내 관계가 틀어지게 된 것이다. 그때 내가 먼저 연락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자 그 신부는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일단 미안하다고 입을 떼면 그때는 이미 잘잘못이나 시시비비는 따질 필요가 없게 된다. 그저 화해의 마음인 것이다. 그러고 나니 내 마음도 편해졌다. 그렇게 형제와 화해를 하는 것, 그것 한 가지라도 실천한다면 사순 시기의 의미를 잘 살아가는 것이다.

■ 나에게 주신 예수님의 선물 - 권길중(바오로·전 한국평협 회장)

매일 저녁 기도에서 하루의 삶을 습관적으로 성찰한다. 예를 들면,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을 따랐는가, 형제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이들을 사랑하며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었는가하는 것이다. 또 복음을 기억하고 실천할 수 있었는가, 내 앞에 다가온 어려움을 보면서 ‘버림받은 예수님’이심을 알아보고 항상 즉시 기쁘게 그분을 끌어안고 사랑해드렸는가 등을 성찰한다.

그리고 꽤 여러 차례 ‘아니오’라는 답이 나올 때는 고해소를 찾는 것이 거의 습관이 됐다. 그래서인지 재의 수요일에 머리 위에 재를 받으면서도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사순 내내 조금 더 기도하고, 재를 지키고 가난한 형제들을 찾아 나누면서 성주간을 지내고 부활을 기쁘게 맞으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해 3월 학기 초에 학교 내 인사발령이 있었다. 먼저 담임교사를 발표했다. 모두가 긴장하고 듣고 있었는데 1학년 1반부터 시작해서 3학년 13반까지 모두 발표가 끝났는데 내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그 다음에 두 반 혹은 세 반에 한 사람씩 배정하는 부담임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나는 내 신상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다음은 업무를 분장하는 차례였다. 먼저 각 부장 교사들을 불렀는데도 변함이 없었다. 그 다음에는 각 부에서 일할 담당을 호명했는데도 나는 없었다. 이제까지 누구도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던 터라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난감하게도 내가 속한 부서가 없었으니, 내 책상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옥을 헤매는 이런 상황 속에서 나를 찾아주신 ‘버림받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됐다. 그래서 속으로 “당신이시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온갖 수모를 겪어 주신 당신을 만날 수 있었음에 다시 감사드립니다”라고 가슴 깊은 속에서 외칠 수 있었다. 정말 다행한 은총의 순간이었다.

그날은 그렇게 잘 보낼 수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인사 조치를 당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열심히 근무한 직원에게 주는 상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억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정말 부끄러워서 집에서도 말하지 못한 지옥의 나날이 지속됐다. 그 며칠 후 재의 수요일을 맞아 머리에 재를 받았고, 미사 후에 성체조배를 하면서 복음을 묵상했다.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예수님에게 자신 있게 말씀드린 부자청년의 이야기였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묻는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계명들을 제시하며 지킬 것을 말씀하셨고, 그 청년은 “그런 것들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다”고 자신 있게 말한 대목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권하시지만 청년은 가진 것이 많은 부자였기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면서 떠나갔다.(마태 19,16-26 참조)

그렇다. 나는 나름으로 학생들을 사랑하고 있고, 여러 출판사로부터 참고서 원고를 청탁받을 만큼 실력 있는 교사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부자’가 되어 있었다.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신 예수님의 성령은 존재가 없고 내 능력과 자만으로 부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이 인사 참사(?)는 내가 가진 가장 값진 것을 그분께 바쳐드리고 어린이와 같이 되어 부활과 천국에서 받을 상을 생각하며 살아내야 할 내게 주신 값진 선물이 됐다. 그 뒤부터의 사순 시기는 ‘나의 버림과 죽음’을 바치고 부활의 희망을 기대하는 봄이 됐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사순 시기에 멀리 보이는 산이 표현하는 생동하는 색깔로 바뀌었다. 그 이후 부활의 희망으로 모든 것을 버리는 사순 시기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