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75) 미소 기도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03-05 수정일 2019-03-05 발행일 2019-03-10 제 313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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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수도회 출장 일로 외국에 있는 우리 수도회의 제1 국제 양성소에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운이 좋게도 머무르는 동안, 그곳에서 유기 서원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인 형제와 외국인 형제들의 서원 갱신식에 참석했습니다. 또한 그날 새벽에 제2 국제 양성소 형제들이 서원 갱신을 하기 위해 그리고 서원 갱신 미사를 참례하기 위해 25명 이상의 양성 받는 형제들이 제1 국제 양성소로 왔고, 그들과도 반갑게 만났습니다. 그날 예식을 하는 동안, 다국적 출신의 형제들과 서원 갱신 미사를 봉헌하는데, 영어 성가를 얼마나 크게 잘 부르던지. 한글 성가도 제대로 잘 못하는 나는 영어 성가를 따라 부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는데…!

미사 후 나는 하루 종일 외부 출장 업무를 한 후 오후에 국제 양성소로 돌아왔습니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형제, 식당에서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하는 형제, 마당에서 운동하는 형제들로 시끌벅적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이들을 양성하기 위해 이들 곁에서 이들과 함께 지내는 양성 담당 형제들의 헌신적인 모습이 고마웠습니다. 특히 언어와 문화, 생각이 다른 젊은 형제들이 가진 하느님의 성소를 소중하게 아끼고, 그들을 귀하게 양성하는 모습에 마음으로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와 함께 조촐한 서원 갱신 축하식이 있었는데, 한 마디로 혼란과 조화의 연속이었습니다. 각 나라 형제들이 자기 나라 특유의 억양을 섞어 영어로 서로 대화하는데, 말을 하면서도 나와 형제들 서로가 이해를 한 것 같기도 하다가 돌아서면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이해를 못 한 것 같은데 놀랍게도 이해를 하고…. 언어가 주는 놀라운 기적과 같은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그날 밤, 회식을 마치고 손님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는데, 글쎄 꿈에….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에게 ‘제발, 그 탑을 쌓지 마세요, 큰일 나요, 큰일!’ 하며 울며불며 거기 있던 사람들을 뜯어말리다가… 잠 깼습니다. 언어 때문에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휴!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다음 날 아침, 미사를 마치고 형제들과 북적거리며 아침 식사를 하는데 나는 양성 담당 형제가 있는 식탁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에게 물었습니다.

“정말이지, 언어가 다른 지. 청원자 형제들을 먹여 살리는데 힘들겠다.”

“아뇨. 함께 살다 보니, 그냥 좋아요.”

사실 그날 아침 식은땀까지 흘리며 바벨탑 쌓기를 말린 꿈 때문에, 외국에서 고생하는 형제들에게 뭐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경비를 빼고 가지고 있는 돈을 봉투에 담아 양성 담당 형제에게 줄 생각이었기에 물었습니다.

“혹시 살면서 필요한 거 있니? 음, 가능하면 뭐라도 해 주고 싶어.”

내가 예상했던 대답은 양성 담당 형제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마음이 그러시다면, 용돈을 좀 주세요. 형제들과 잘 쓸게요’ 그러면 나는 ‘작은 정성이지만 내 마음을 담았어!’ 하며 봉투를 주는 것인데! 그런데 양성 담당 형제의 대답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형제들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지으며, 기도해 주세요. 그러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띵…!’ 외국인 형제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긴장감에 바벨탑 꿈(?)까지 꾸더니, 결국은 동료 한국인 형제들과 마음의 소통도 못한 듯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형제들 모두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서로 다른 형제들이 마음으로 소통하고, 마음으로 삶을 나누는 것, 그것은 바로 미소임을 가르쳐 준 형제들! 그렇습니다. 미소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 그것으로 많은 것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미소가 온전한 기도이며, 삶의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긴장 속에 나는 늘 한발 늦게 깨닫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