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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 사순 시기, 금육·금식으로 절약 봉헌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03-05 수정일 2019-03-06 발행일 2019-03-10 제 3135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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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랑의 마음, 사순저금통에 그득히

2019년도 수원교구 사순저금통.

해마다 사순시기가 되면 판공성사표와 함께 만나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사순저금통이다. 사순저금통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사순저금통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금육과 금식, 즉 재(齋)를 준수하며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선조들의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던 시기부터 신앙선조들은 대·소재를 지켜왔다. 특별히 사순시기를 ‘봉재(封齋)’라 부르며 재를 철저하게 지켜왔다. 재는 신자들이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며 지키는 실천이다.

박해시기 이후 조선교회는 교황의 관면을 받아 사순시기의 재 준수 규정이 완화됐지만, 신앙선조들은 재의 관면을 ‘애긍시사’(哀矜施舍)로 대신했다. 애긍시사는 가난한 이를 위해 자선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1923년 저술된 「회장직분」은 “조선의 교우들에게는 특별히 대·소재에 많은 관면이 있으니 그 대신 사순시기에 매주 묵주기도 5단을 바치거나 자선 행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신앙선조들이 사순시기에 재를 대신해 자선을 실천하던 전통은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54년 주교회의는 한국전쟁 중 허용했던 재의 관면을 취소했다. 그러나 재의 수요일은 설 연휴와 겹치는 일이 많아 교구장이 관면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경우 재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절제하는 마음으로 가난한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도록 했는데, 이를 ‘봉재애긍’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신자들은 사순시기에 대·소재를 실천하며 희생과 극기를 하고, 절약한 만큼을 봉헌했다. 1977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의 전신인 ‘인성회’는 사순시기 전국적으로 자선모금을 실시하자고 건의했다. 여기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사순저금통’이 시작됐다.

현재 각 교구는 신앙선조들에게서 이어오는 전통을 사순저금통으로 지키고 있다. 각 교구는 사순저금통에 모인 헌금을 가난한 이웃의 생계를 위한 지원금이나 결식아동을 위한 장학금, 재난을 겪는 이들을 위한 긴급구호자금, 해외의 가난한 이웃을 위한 성금 등 다양한 형태로 전달하고 있다.

사순시기가 시작됐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재를 실천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순저금통에 봉헌을 하며 사순시기의 의미를 더해보면 어떨까.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