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평화의 길로 이끄심을 믿으며 / 이원영(프란치스코)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3-05 수정일 2019-03-05 발행일 2019-03-10 제 313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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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의 구체적인 길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없이 막을 내렸다. 회담이 결렬되고 나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회담 결렬의 원인이 북한이 영변핵 폐기에 대한 상응 조치로 경제 제재의 전면적 해제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소위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가 돼야 제재 해제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북한은 회담 당일 자정이 넘은 시각에 긴급하게 기자회견을 소집해 자신들은 “영변 지역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 물질 생산 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하고, 이에 상응 조치로 미국이 북한의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에 대한 대북제재를 풀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엔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하는 일부 제재를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회담장 안에서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진실은 알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 양측 모두 적어도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재개는 없을 것이라 했다. 북한 역시 3월 1일자 로동신문에서 “조선반도 비핵화와 조미관계의 획기적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긴밀히 련계해 나가며 하노이 수뇌회담에서 론의된 문제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어떻게 협상의 끈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회담 결렬에 대한 북미 양측의 설명에서 역설적으로 양측의 요구 사항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영변을 포함한 일체의 핵시설과 미사일, 핵탄두 등에 대한 사찰과 폐기 등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완전한 제재 해제와 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양측의 요구를 협상의 최종 목표로 하되,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준비 과정에서, 비록 서명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작성된 합의문을 1단계로 해서 단계적 접근을 하면 어떨까? 즉 최종 목표를 향한 1단계를 이 합의문의 실천과 더불어 다음 단계의 내용과 실천 방안에 대한 협의 과정으로 설정한다면 어떨까?

북미 양측에 대해 이러한 설득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 북한의 진의를 확인하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목표인 북한 비핵화가 단계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공감을 하게 된다면, 우리가 북미 협상을 또 다시 추동하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쉽지 않은 길이지만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루카 1,79)이라는 말씀을 믿고 나아가야 할 때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