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가짐 없는 큰 자유 / 박민규 기자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19-03-05 수정일 2019-03-05 발행일 2019-03-10 제 313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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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짐 없는 큰 자유’는 올해 선종 20주기를 맞은 고(故) 제정구(바오로·1944~1999) 국회의원의 생전 작업실의 한 가운데 걸려 있던 문구다. 그는 한평생 빈민촌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고, 국회의원이 돼서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활동했다.

제정구 의원뿐만 아니라 교회의 많은 성인들과 진리를 추구하는 현자들도 하나같이 가난과 무소유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하나라도 더 가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욕망의 시대에, 버리고 비워야 한다는 가르침이 얼마나 스며들 수 있을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가난의 대물림을 받아들이는 차원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더 가난하게 되기를 촉구한다는 사실에서 현실과의 괴리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본지 3월 3일자 신문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에서 서창의(안나·82) 선감공소 전 회장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장 탁월한 길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회장이 멀리까지 찾아온 기자들에게 대접한다고 꺼내든 낡은 지갑을 보며 삶 속에서 우러나온 고백임을 알 수 있었다. 다시금 서 회장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바라봤을 때, 그녀의 표정과 모습에서 한없는 자유로움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경제적 상황과 사람의 품위는 결코 비례할 수 없음을, 오히려 가난과 겸손 안에서 드러나는 온화함에 보다 깊은 차원의 울림이 있음을 발견했다.

가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 낮은 곳에서 풍기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간직하고 참 자유를 만끽하며 진정한 연대를 맺기 위함이다. 수많은 욕망과 마주하는 일상 속에서 잠시 낮은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사순 시기의 시작점에서 ‘가짐 없는 큰 자유’라는 역설적인 초대에 조심스레 응답해 본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박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