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74) SOS 사건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02-25 수정일 2019-02-26 발행일 2019-03-03 제 313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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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치열하게 사는 어느 수사님이 있습니다. 그 수사님은 젊은 나이에 수도원에 입회한 후, 그때부터 종신서원을 하고 사도직 안에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수사님과 나는 예전에 같이 살았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에도 변함없이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수사님의 모습을 지켜보며, ‘좋아. 언제까지 저렇게 살아가나 보자!’ 그렇게 나는 별생각을 다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수도원 행사 때에 만나면, 여전히 변함없이 즐겁고 기쁘게 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그 형제를 수도원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수도원 마당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의 안부와 함께 수다를 떨다가 내가 물었습니다.

“형제는 언제까지 뜨겁게 살거야? 곁에 가면 데일까 가지를 못 하겠어, 하하하.”

“아니에요. 저 잘 못 살아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해요. 단 한 번뿐인 이 삶,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삶, 최선을 다해 살아봐야겠다! 그리고 이 말은 우습게 들릴지는 몰라도, 저는 오래 살지는 못할 거예요. 그래서 더,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뿐이에요.”

“허 참.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 것인데, 형제가 뭐 잘 났다고 일찍 가니, 마니,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예.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보시기에 날마다 가슴 벅찬 삶을 살아보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 내 삶의 열정을 보시고 일찍 데려가지 않으실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허허. 별 해괴망측한 논리도 다 있네. 암튼 어떤 마음에서건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좋기는 좋다. 그런데 오늘은 어디서 자?”

“아, 본원 손님방에서 자려고요.”

“그래, 잘 됐네.”

그날 저녁, 기도와 식사를 마치고 조용히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후! 밤 10시30분이 넘어 그 수사님으로부터 나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SOS! 긴급 상황입니다. 도와주세요.’ 나는 깜짝 놀라서 잠옷 바람으로 그 형제가 묵고 있는 손님방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또 문자가 하나 왔는데 확인은 하지 않고, 그 방으로 뛰어가서 노크 없이 문을 확 열었습니다. 그러자 그 수사님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제 휴대전화가 이상이 있어서, 깔아놓은 프로그램을 지우려는 과정에서 저장해 놓은 위기 알림 프로그램 문자가 수사님에게 전달된 모양입니다.”

그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좀 전에 달려오면서 받은 문자를 확인했더니, 그것 또한 그 수사님이 보낸 문자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잘못 보내졌어요.’ 안도의 마음이 가시자, 으흐흐흐. 뭔가 꼬투리를 잡을 짓궂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오늘, 마당에서 하느님께서 형제를 부르시면 ‘예’하고 응답하며 하느님께로 간다더니, 어찌 이리 ‘SOS! 긴급 상황입니다. 도와주세요’라는 문자를 깔아 놓으셨어!”

푸하하하. 그 형제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너무나 웃겨,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손님방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나는 그 형제가 ‘SOS 상황’이 생길 때에 내가 제일 먼저 달려와 주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나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 놓은 수사님의 따스한 의리에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속으로 다짐해 봅니다. ‘음, 하느님 품으로 갈 마음으로 날마다 오늘을 뜨겁게 살아가는 우리 형제. 그려, 그려. 앞으로 이런 문자가 또 오면, 또 달려가서 너를 살려줄게. 그래서 골골 100살인 나랑 오래오래 같이 더 살면서, 네가 세상에 보다 더 헌신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