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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특집] 사순에서 부활까지 전례와 신앙생활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9-02-25 수정일 2019-02-26 발행일 2019-03-03 제 3134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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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과 죽음, 부활 묵상하며 예수님 닮아가는 시기
부활의 영광에 대한 희망으로
십자가상 고통과 죽음을 묵상
전례 안에서 구원의 신비 체험

사순 시기는 대림 시기와 함께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이끄는 커다란 두 축이다. 신앙인들은 사순 시기 동안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부활의 영광을 향해 나아간다. 풍요로운 사순 시기의 전례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극 참여하는 것은 신앙을 성숙시키는 훌륭한 방법이다. 사순 시기 전례와 올바른 신앙 생활의 요소들을 알아 본다.

■ 올바른 전례 참여는 신앙생활의 핵심

매년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되풀이해서 체험한다. 전례는 단지 과거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희생 제사로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은 교회의 전례 안에서 매번 생생하게 재현된다. 구원의 신비가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현재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신자들은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힘을 거듭 체험하며, 세상 끝날에 마침내 완전히 참여하는 구원을 미리 맛보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전례는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 사순-부활, 대림-성탄은 전례와 신앙생활의 두 축

교회의 전례력은 하느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를 1년이라는 전례 주기 안에 압축하고 있다. 하루, 한 주 그리고 한 해의 리듬을 갖고 있는 전례 주기는 대림과 성탄, 사순과 부활 그리고 연중 시기와 다양한 축일들로 구성된다. 이러한 한 해의 전례 주기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로부터 시작된다. 연중 시기는 총 34주간으로 구성되며, 그 사이에 대림과 성탄, 사순과 부활 시기가 놓여 있다.

연중 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 후 월요일부터 ‘재의 수요일’ 전 화요일까지, 그리고 ‘성령 강림 대축일’ 후 월요일부터 대림 시기 전 토요일까지에 해당된다.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그리고 대림 시기는 주님 성탄 대축일 전 4주간의 시기다.

이러한 전례 주기 안에서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와 주님 부활 대축일,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와 주님 성탄 대축일은 신앙인들의 전례와 신앙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두 축을 이룬다. 따라서, 충실한 신앙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대림 시기와 함께, 사순 시기를 잘 보내는 일은 기본적인 신앙생활의 의무가 아닐 수 없다.

■ 사순 시기의 유래와 의미

사순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 제사를 기념하는 시기다. 하지만 예수의 수난은 수난과 고통 자체로서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과 직접 연결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수난과 고통 그 자체의 의미에 집중하기보다는 부활의 영광과 환희에 비춰 고통과 십자가상 죽음을 묵상하게 된다. 고행과 단식 역시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는,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이웃에 대한 자선과 나눔, 수난과 죽음 끝에 위치하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 희망과 깊이 연결돼 있다.

사순 시기는 이마에 재를 얹는 재의 수요일로부터 시작된다. 그 다음 오는 첫 주일을 사순 제1주일로 해서 모두 6번의 주일을 지낸다. 마지막 사순 제6주일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고 이때부터 성주간이 시작된다. 그 안에 포함된 주님 만찬성목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는 부활을 직접적으로 준비하는 파스카 성삼일로, 이 시기는 사순 시기와는 구분된다.

사순 시기는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설정된 40일간의 기간’이다. 40은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40년을 살았고, 엘리야 예언자는 호렙산으로 가면서 40일 동안 단식했다. 예수님 역시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했다. 전통적으로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정화와 준비의 기간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 사순 시기의 전례와 영성

사순 시기의 전례적 특징을 보면,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뜻에서 환희와 기쁨을 노래하는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바치지 않는다. 제의의 색은 회개를 의미하는 보라색을 사용하고, 제대의 꽃 장식도 삼간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치도록 한다.

사순 시기 전례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세례에 대한 회상과 준비, 그리고 참회와 보속의 시기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신앙인들은 파스카의 신비를 준비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전례헌장」은 “세례의 기억이나 준비를 통하여, 또 참회를 통하여 신자들이 더 열심히 하느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며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게 함으로써, 전례에서나 전례 교리교육에서 이 두 가지 성격이 더욱 더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제109항)고 규정한다.

사순 시기는 본질적으로 세례성사의 특성을 갖는다. 사순 시기에 요청되는 참회 역시 세례의 특성에 근거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로마 8,17) 하기에 사실 사순 시기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정화하는 시기다.(에페 5,25-27 참조) 그래서 사순 시기의 초점은 고행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끄시는 정화와 성화다.

■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 그리고 파스카 성야

사순 시기의 마지막 주간은 성주간이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파스카 신비를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기간인데, 사순 시기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에 해당된다. 이후 주님 부활 대축일 저녁기도까지 이어지는 기간은 파스카성삼일이라고 불리우며 구세사의 절정이자 완성인 주님의 파스카 신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경축하는 시기다.

성목요일에 거행되는 주님 만찬 미사는 성체성사의 제정을 기념한다.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라는 의미의 발씻김 예식이 이날 거행된다. 영성체 후에는 성체를 수난 감실로 옮기고 성체조배를 이어간다. 제대를 벗기고 십자가도 가려진다. 성금요일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는 날이다. 성사도, 미사 집전도 없다. 다만 말씀의 전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구성된 수난 예식을 거행한다. 단식과 금육을 지키며,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고 그 신비에 깊이 참여한다.

이어 성토요일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무덤 옆에 머물며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 깊은 침묵 속에서 부활의 실현을 고대하고 기다린다. 제대는 벗겨진 상태이고 미사도 없다. 하지만 침묵 속의 기다림은 마침내 해가 진 다음 거행되는 파스카 성야 예식에서 장엄하게 채워져 절정을 맞는다.

성토요일, 해가 진 후 파스카 성야 예식이 거행된다. 이 때부터 다시 ‘알렐루야’를 노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물리치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참된 해방의 밤을 기념한다. 어둠, 죽음에서 빛과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파스카 성야 미사는 빛의 예식, 말씀 전례, 세례 예식, 성찬 전례 등 4부분으로 구성된다. 특히 성찬 전례는 부활의 정점을 이루는 부분으로서 십자가상 희생 제사를 기념하는 동시에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게 하는 참된 생명의 성사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