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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3·1운동과 한국천주교회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2-25 수정일 2019-02-26 발행일 2019-03-03 제 313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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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1일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에 국무총리와 민간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구성돼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3·1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나아가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으며, 민족 내부의 운동을 넘어 중국의 5·4운동과 같은 약소 민족운동 발흥에 영향을 끼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북한에서는 3·1운동을 ‘3·1인민봉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북쪽 지역의 3·1운동에 대해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인 김형직이 주도한 ‘조선국민회’를 통해 각성된 애국지사들과 청년 학생들이 앞장서서 이끌었다고 기술한다. 특히 당시 8세였던 김일성도 이 운동에 참여했다고 밝힌다. 그렇지만 3·1운동은 혁명적 당이 없었던 시기에 일어난 실패한 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실패 이후 1926년,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이라는 혁명운동 조직을 건설했으며, 이후 독립운동은 만주로 건너간 김일성이 이끌었던 항일무장투쟁이 중심이 됐다고 하는 것이 북한의 ‘공식적 입장’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3·1운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남과 북 모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 역사는 소중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남과 북 모두에서 독립운동가로 공인된 분들도 다수가 있다. 예를 들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이면서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안장된 분들이 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분들로는 김규식, 조소앙 선생 두 분이 있으며, 대한민국장 다음의 훈장인 대통령장을 받은 분들 중에서는 오화영, 유동열, 조완구, 윤기섭 선생 등이 있다. 그리고 건국훈장이 추서된 오동진, 강제하, 최동오, 엄항섭 선생들 역시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3·1운동 100주년 담화를 통해 한국천주교회가 정교분리 정책을 내세워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했던 것에 대해 “100년 전 많은 종교인이 독립운동에 나섰지만, 그 역사의 현장에서 천주교회가 제구실을 다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면서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한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천주교회는 과거를 반성하고…… 한반도에 참평화를 이루고, 더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남과 북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독립운동 역사의 지평을 확대하는 길에 우리 교회가 앞장서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일이야말로 분단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참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