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73) 마음의 나병, ‘과도한 열심’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02-19 수정일 2019-02-19 발행일 2019-02-24 제 313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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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게 지내는 동창 신부가 어느 날 점심때,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가벼운 산책 복장으로 나를 만나러 수도원에 왔습니다. 깜짝 방문이었고, 나 또한 쓰레기 버리러 수도원 마당에 나갔다가 만난 것이라…. 그래서 나는 물었습니다.

“아니,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그냥, 산책 삼아 여기까지 걸어왔지. 너 없으면 그냥 가고. 암튼 물 한 잔 주라.”

나는 그 동창 신부를 데리고 사무동 내 연구소로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니,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온 거야?”

“응, 며칠 전에 목 디스크 시술을 했거든. 그리고 그때 다짐한 게 있어. 음, 점심 먹고는 무조건 걷는다, 뭐 이런 원칙을 좀 세운거지.”

“예전부터 목이 안 좋다고 했는데, 결국 시술을 받았구나.”

“사실은 재발한 거야. 예전에 종합병원에서 목 디스크 수술을 받으려고 했었지. 그런데 수술을 반대하던 동창 신부들이 나를 퇴원시켜, 재활 병원으로 데리고 갔던 거야. 그래서 6개월간 꾸준히 재활 치료를 받아 가까스로 잘 나았거든. 그런데 석 달 전부터 다시 팔이 저리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지난주에 병원에서 재발 판정을 받았어.”

“아휴, 지난 몇 달 동안 무리를 좀 하더니, 결국은…, 그랬구나.”

“사실 이번에 재발되었을 때에는 좀 발악을 했어.”

“누구에게 무슨 발악을?”

“누구긴 누구니, 우리 주님이지. 제일 만만한 분이시잖아. 사실 지난 1년 동안, 사제로서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해. 음, 열심히 공부도 했고, 열심히 책도 읽고, 암튼 열심히, 열심히 살았거든. 그런데 또다시 목 디스크가 재발하니, 마음이 무겁고,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도 없더라. 그래서 주님께 따지듯 울부짖었지. ‘주님, 왜…, 도대체 제가 사제로 뭐 어떻게 살았다고 생각하시기에…, 이렇게 또다시 목 디스크의 고통을 허락하신 겁니까?’ 그렇게 우리 주님을 괴롭혔지.”

“그래도 네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데 어느 날, 묵상 중에 주님께서 내게 응답해 주시기를, ‘나는 한 번도 너에게 열심히 살라고 한 적이 없단다. 그저 충실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단다.’ 그러면서 자연히, 충실함에 대해 깊은 묵상을 했어. 가만히 보니, 영성 생활 안에서 열심과 충실은 다르더라. 내가 열심할 때를 보면, 반드시 열심의 결과에 사로잡혔고, 특히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무척 힘들어하더라. 그리고 과도한 열심에 빠질 때면, 내 열심함의 기준과 잣대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까지 하고. 그래서 과도한 열심에 빠지면 빠질수록, 나를 달달 볶으면서, 다른 사람도 끊임없이 판단하게 되더라. 그런데 충실한 사람은 우선 마음의 중심이 건실한 사람이라, 스스로 만족할 줄 알게 해 주더라. 그리고 충실한 사람의 삶은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 학문과 운동 등에서 안정감과 균형감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이제 열심히 사는 거는 좀 접고, 충실히 살아보려고. 몸과 마음을 함께 잘 돌보며, 학문과 운동의 시간을 함께 소중히 여기는 거지. 열심함의 잣대로 결과 위주의 삶을 살기보다, 충실함을 간직하며 주어진 삶을 기쁘게 살려고. 그동안 내 삶은 마음의 나병에 걸린 것처럼 일그러진 삶을 살았어. 이제야 바로 사는 것 같아.”

마음의 나병인 과도한 열심에서 벗어나, 충실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나 또한 오늘 하루, 내가 내 자신에게 충실히 살아가자고 속삭여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