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회는 왜 핵폐기를 주장하는가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19-02-19 수정일 2019-02-19 발행일 2019-02-24 제 313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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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 보시니 좋았던 세상 파괴하는 ‘생태적 불의’
창조질서 보전은 인간의 의무
생명·환경권 지켜주기보다 경제논리 앞세운 결정 비판
에너지 절약 적극 실천하며 대안 마련 위해 함께 노력해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월 1일 제96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를 열고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이하 신고리) 4호기 운영 허가를 의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2월 14일 ‘신고리 5·6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측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를 취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사회에서는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그 이유는 무엇일까. 관련 문헌 조사와 인터뷰 등을 통해 이를 알아봤다.

■ 생태 정의를 위한 인간의 책임

‘환경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지침서’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 33항에서는 인간에게 생태 정의를 실현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창조주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과 자연 세상에 대해서도 하느님 창조의 일꾼으로서 소임을 다해야 할 책임을 지닌다는 뜻이다.

또 그 책임에 대해서는 ‘하느님을 창조주로 올바로 섬겨야 할 책임’, ‘동시대의 인간들에게 창조의 선물이 정의롭게 돌아갈 수 있도록 행동하는 책임’, ‘인간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도 창조주께서 원래 주신 그 축복을 ‘보시니 좋았다’ 하신 그대로 누릴 수 있도록 돌보고 배려하는 책임’ 등 세 가지를 제시한다. 이러한 정의에 어긋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생태적 불의(不義)’라고도 규정한다.

■ 핵발전은 생태적 불의

이러한 면에서 교회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책임을 지키지 못하는 핵발전을 ‘생태적 불의’로 본다. 모든 피조물을 창조주께서 ‘보시니 좋았다’ 하신 그대로 누릴 수 있도록 돌보고 배려하는 책임부터 그렇다. 주교회의가 2013년 11월 25일 발행한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119항에서는 핵과 관련해 성찰할 점은 특히 생명권과 환경권이라면서 “핵기술은 생명권과 환경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가공할 파괴력으로 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 자체를 절멸할 것”이라고 말한다. 121항에서도 “핵기술은 생명체 자체는 물론 생태계 전체를 교란시키고, 회복 불능의 상태로 내몰아,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 무생물, 미래의 모든 생명체의 삶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동시대의 인간들에게 창조의 선물이 정의롭게 돌아갈 수 있도록 행동하는 책임도 마찬가지다. 같은 책 131항에서는 “소외와 착취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핵무기와 핵에너지는 재화의 보편 목적과 공동 사용권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핵무기는 자연과 시민을 철저하게 소외시키고 착취하는 폭력과 다름없으며, 핵발전은 그 소비자가 핵산업 노동자를, 에너지 소비자는 생산지를 소외시키고 착취한다. 현재의 이용자는 미래의 세대를 배제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해석한다.

135항에서도 “정부와 기업, 과학과 언론 모든 분야는 핵무기와 핵발전과 관련해 윤리적 성찰을 하지 않은 채 오직 경제 논리로만 접근한다”며 하느님을 창조주로 올바로 섬겨야 할 책임마저 저버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핵발전은 인간이 생태 정의를 위한 세 가지 책임을 모두 다 지지 못하는 생태적 불의라는 것이다.

종교인 탈핵 서울순례단이 2018년 10월 18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위치한 서울 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한빛 4호기 핵발전소의 즉각 폐쇄를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계속되는 생태적 불의

그러나 이러한 교회 입장과 달리, 신고리 4호기 운영은 허가되고 신고리 5·6 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소송은 기각됐다. 특히 신고리 5·6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사정(事情)판결’을 내렸다. 행정소송법 제28조 1항에 명시된 사정판결은 원고의 청구를 이유가 있다고 인정할 경우에도 처분 등을 취소하는 것이 현저히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때에 법원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원자력안전위 위원 중 위촉일로부터 3년 이내에 한국수력원자력 내부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결격 사유가 존재하는 위원이 있기 때문에 그 의결과 그에 따른 처분도 위법하고,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중대사고’ 관리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야 하는데 그와 같은 기재가 누락돼 위법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만으로는 건설허가처분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했다. 건설허가처분을 취소할 경우 1600여 개에 이르는 관련 사업체들 중 상당수가 도산해 산업과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등 “처분 취소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매우 크다”는 것이 이유다.

신고리 5·6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소송은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와 시민 559명으로 구성된 ‘560 국민소송단’이 원자력안전위를 상대로 2016년 9월 12일 접수한 사건이다.

■ 생태 정의 실현을 위해

앞서 언급한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 35항에서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도 2009년 코펜하겐 유엔 기후 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에 보낸 담화에서 창조 질서 보전을 위해 우리에게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검소한 생활 양식’과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 있는 생활 양식’이라고 강조하셨던 것이라며 이를 제안한다.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156항에서도 핵기술은 인간과 자연,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분야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사태라며 모두가 알아야 하고, 성찰하고, 판단하고, 책임을 갖고 참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157항에서 “핵의 위험성과 비윤리성을 알고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핵기술의 영향에 놓여 있는 현실에서 탈핵, 비핵의 길을 가려면 반드시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교회는 탈핵을 넘어 대안을 찾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158항에서는 교회 관련 시설에 자연 에너지 설비를 설치할 것, 모든 차원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길을 찾고 이를 실천할 것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 서울 환경사목위원장 백종연 신부

“경제논리보다 생명·환경권 우선돼야”

절제와 검소한 삶 실천 중요

창조보전 사업 동참 당부

“생명권과 환경권을 포함하는 인권을 생각하기보다는 경제논리를 우선시한 결정이라고 봅니다.” 신고리 4호기 운영 허가와 신고리 5·6 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소송 원고 패소 판결에 대해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 백종연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방사능 위험 등으로 발전소 건설이나 운영 후에도 계속 고통받을 수 있는 약자들”이라면서다. 그는 “주민들은 생명권도,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환경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백 신부는 “어려운 일이지만,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핵발전소를 축소해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핵발전소를 늘리는 것은 미래세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이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생명권과 환경권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라면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한다는 차원에서도 이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백 신부는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게 사셨고 우리에게도 절제를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편의나 편리만을 추구하곤 한다”며 “절제와 검소한 삶으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영성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교회에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보전하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며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실시하는 생태 영성학교에 다니거나, 평신도 생태 사도직단체 하늘땅물벗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신자들도 여러 방법으로 하느님 창조보전 사업에 동참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