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기도를

[위령기도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오도 하스 초대 아빠스 선종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9-02-19 수정일 2019-02-19 발행일 2019-02-24 제 3133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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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로 ‘첫 발’ 디딘 한국에서 주님 품으로…
평생 선교사이자 수도자로 살며 복음 선포에 헌신한 오도 하스 아빠스(Odo Hass, 한국명 오도환)가 2월 17일 수도 서원 66년을 일기로 선종했다. 향년 88세.

한국은 오도 아빠스가 선교사로서 ‘첫 정’을 주고 생의 마지막까지 소명을 실천했던 곳이다. 특히 그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초대 아빠스로, 왜관수도원을 북한 덕원과 중국 연길 수도원의 맥을 잇는 곳으로 자리 잡게 하고 공동체 성장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한국인 아빠스 탄생에도 큰 힘을 기울여 아빠스가 종신직임에도 불구하고 직무 수행을 맡은 지 7년 만에 사임하고 한국인 아빠스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그가 왜관수도원 수도자들의 직접 투표를 통해 초대 아빠스로 선출된 때는 1964년, 당시 33세의 젊은 나이였다.

이후 오도 아빠스는 일본과 필리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다 2009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필리핀인들을 위한 전례봉사를 담당했으며, 인도와 타이완 수도원에서 봉사하기도 했다. 또한 오도 아빠스는 평소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우리가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체험해야 그것을 기쁘게 행하고 남에게도 전할 수 있다”면서 “북한을 잊지 말고 왜관수도원 역사를 통해 길러낸 힘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해왔다.

앞서 1931년 독일 카를슈타트에서 태어난 오도 아빠스는 공산당의 박해로 강제수용소에서 고초를 겪은 선교사들의 체험을 듣고 선교에 투신할 뜻을 다졌다. 1952년 수도회에 입회해 195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베네딕도회 쇄신에 앞장섰던 클뤼니 수도원의 ‘오도’(Odo) 성인을 본받고자 수도명을 오도로 정했다. 1959년 성 요한 23세 교황에 의해 선교사로 파견된 그는 1960년, 한국에서 선교사로서의 첫 걸음을 시작했다.

한편 고인의 장례미사는 19일 왜관수도원 성당에서 박현동 아빠스 주례로 봉헌됐으며, 유해는 천주교 창마묘지 내 수도자 묘역에 안장됐다.

왜관수도원 원장 박현동 아빠스는 오도 아빠스의 선종 소식을 전하며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늘 파견되는 선교사의 삶을 일생 동안 사신 분”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또한 오도 아빠스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수도자가 됐다’는 당신 말씀대로 평생을 파견된 선교지를 사랑한 수도자였고 바오로 성인의 모범을 따라 산 훌륭한 신앙인이었다”고 애도했다. 이어 선종 소식에 “매일의 일상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되새기고 어려움의 순간마다 주님께 절실히 의탁하며 부르심에 응답하셨던 신앙인의 모범을 다시 보게 된다”고 전했다.

2월 17일 선종한 오도 하스 아빠스의 입관 후 수도자들이 고인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공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