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낙태 실태 조사’ 결과 발표… 가장 많은 응답자 요청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19-02-19 수정일 2019-03-25 발행일 2019-02-24 제 313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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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만 처벌’ 이유로 법 개정 찬성 많아
“아무런 규제 없는 낙태죄 폐지 큰 문제
임신 여성 사회적 보호 받는 여건 절실”
임신·출산 ‘남녀 공동책임’… 국가가 나서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연구원)이 2월 14일 발표한 ‘낙태 실태 조사’ 결과를 두고 교회에 유의미한 결과가 있지만, 자칫 낙태죄 폐지에 힘이 실릴까 우려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생명대학원장 정재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 부국장)는 이번 조사 결과에서 “낙태와 관련해 국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남녀 공동책임의식 강화’가 꼽혔다”며 “그동안 교회가 말해온 것과 부합하는 결과”라고 밝혔다.

그러나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과 낙태 허용사유를 규정한 모자보건법 개정 필요성이 높게 조사됐다는 결과와 관련해서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앞두고 낙태죄 폐지에 힘을 싣는 자료로만 활용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신부는 “지금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한국은 아무런 규제도 없이 낙태를 허용하기만 하는 나라가 돼버릴 것”이라며 “낙태를 합법화하거나 자유화할 게 아니라, 오히려 낙태를 예방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고 임신·출산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보호받고 지지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교회의 가정과생명위원회 위원장 이성효 주교 역시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한국교회는 변함없이 낙태죄 폐지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며 “우리 사회는 낙태죄를 폐지할 게 아니라, 남녀 공동책임의식을 높일 수 있도록 양육비 책임법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의대 김중곤(이시도로) 명예교수도 적지 않은 응답자들이 낙태죄 관련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결과만 놓고 ‘낙태죄를 폐지해야 하나’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우리는 생명을 중심에 놓고 이를 책임지는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낙태 실태 조사’는 연구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연구용역을 위탁 받아 지난해 9~10월 만 15세 이상 44세 이하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번 결과에서 응답자들은 낙태와 관련해 국가가 해야 할 일 1순위로 ‘피임·임신·출산에 대한 남녀 공동책임의식 강화’(27.1%)를 꼽았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 및 피임교육’(23.4%)이 그 뒤를 이었다.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과 낙태 허용사유를 규정한 모자보건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응답자 중 75.4%가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 ‘낙태 시 여성만 처벌하기 때문에’(66.2%)라고 가장 많이 답했다.

모자보건법 제14조 및 시행령 제15조에 대해서는 48.9%가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이유로도 대부분 모체의 생명 위협이나 모체의 신체적 건강보호, 모체의 정신적 건강보호 등을 말해 여성에게만 책임 지우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공통된 문제의식을 보여줬다.

반면 이번 조사 결과에서 연구원은 2017년 한 해 낙태 건수를 약 5만 건으로 추정한다며 2005년 조사 이후 낙태 건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피임 실천 비율의 증가와 응급(사후)피임약 처방 건수의 증가, 만 15~44세 여성의 지속적인 감소를 그 이유로 들었다.

이번 결과에서는 한국사회가 생명존중 사회로 보다 거듭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는 내용도 있었다. 응답자 중 3792명의 10.1%인 383명은 임신경험은 있지만, 낙태는 하지 않았는데 이들 중 71.5%가 ‘태아의 생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낙태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이다.

현재 헌재는 서기석·조용호 헌법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 18일 전에 낙태죄 위헌 여부를 선고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