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밸런타인 데이와 안중근(토마스)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2-19 수정일 2019-02-19 발행일 2019-02-24 제 313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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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4일은 젊은 연인들이 초콜릿을 선물하면서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밸런타인데이였다. 이 날의 유래는 정확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기원전 로마 시대의 발렌티노 주교의 행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가장 널리 퍼져 있다.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2세가 군인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렸을 때, 가톨릭교회의 발렌티노 주교가 군인들을 위해 황제의 칙령을 어기고 혼인성사를 집전해 주었다고 한다. 결국 이것이 문제가 돼 수감되고 결국 사형당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날로 밸런타인데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 같은 국가들에서는 밸런타인데이가 종교적 이유에서 금지됐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슬람 국가지만 세속화가 많이 진행된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카타르 등과 같은 국가들에서는 이 날을 기념일로 여겨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의 경우 이틀 후인 2월 16일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태어난 ‘광명성절’이기에 이에 묻혀서 특별한 날의 의미를 갖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2월 14일은 109년 전인 1910년, 우리 민족을 침략한 원흉이었던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던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에 이어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의 재판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은 개인적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선 의병의 참모중장이라는 군인으로서, 조선을 침략하는 일제와의 전쟁 과정에서 벌인 일이라고 밝혔다. 즉 최근 일부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듯이 테러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젊은 연인들이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밸런타인데이의 풍경을 “좋은 때다.” 하면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렇지만 밸런타인데이에 젊은 연인들이 만나 “오늘이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았던 날이래”라는 말 한마디쯤은 서로 나누면서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봤으면 한다. 최근 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문제, 초계기 위협 비행 문제 등을 통해 일본은 우리에 대해 의도적으로 도발을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왕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발언에 대해 일본이 마치 외교적 문제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든다. 가톨릭 신자였던 안중근(토마스)은 ‘죽음의 판결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보다 앞서간 자들과 뒤에 올 자들을 기억하여라’(집회 41,3)는 말씀처럼 담대했다. 그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미국, 중국, 일본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남북한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여야 할 것이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