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교황, 사회 정의 외치는 해방신학에 대한 우려 ‘이제 그만’

입력일 2019-02-19 수정일 2019-02-19 발행일 2019-02-24 제 3133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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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 예수회원과의 대화 「치빌타 카톨리카」에 공개
“시간·경험·성찰 거치며 일부 잘못된 요소들 정화됐다” 밝혀

【바티칸 CNS】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간, 경험, 성찰을 거치면서 해방신학과 복음에서 사회 정의에 대해 말한 바를 명확하게 하려는 해방신학의 의도가 ‘정화’됐다고 밝혔다.

교황은 1월 26일 세계청년대회가 열리던 파나마에서 중앙아메리카 예수회원 30명을 만나, “오늘날 우리 나이든 사람들은 지난날 해방신학을 놓고 얼마나 걱정했었는지를 생각하며 웃곤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날 전 신앙교리성 장관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이 해방신학 때문에 교회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았던 페루 도미니코회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를 초대해 함께 미사를 봉헌한 일화를 소개했다. 교황은 “누군가 신앙교리성 장관이 교황과 미사를 공동집전하도록 구티에레스 신부를 데려왔다고 말했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그가 취해서 그러겠거니 생각할 것이다”고 말했다.

「치빌타 카톨리카」(La Civiltà Cattolica)는 2월 14일 교황과 중앙아메리카 예수회원과의 질의응답 내용을 공개했다. 교황은 이날 언제 구티에레스 신부와 미사를 공동집전했는지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교황이 거주하며 매일 미사를 집전하는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구티에레스 신부를 개별적으로 만났던 2013년 9월경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해방신학은 1960~7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생겨났다. 해방신학은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는 영감과 원리를 복음에서 찾고자 했다. 해방신학의 출발점은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이라는 구체적인 상황과, 죄와 불의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싸움 속에 성서를 자신들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 훗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된 조셉 라칭거 추기경은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일하면서 해방신학에 관한 주요 문헌 두 권을 발간했다. 그는 가난한 이와 정의에 대한 해방신학의 관심을 찬양하면서도 해방신학이 지나치게 마르크스 사회 분석에 의존했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중앙아메리카 예수회원은 사회 정의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투쟁에 ‘선구자’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황은 일부 해방신학의 요소에 잘못된 점이 있었지만, 교회 내에서 해방신학, 심지어 모든 중앙아메리카 예수회원을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일부 교회지도자들은 중앙아메리카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했지만 “주교들은 당시 정권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고 말했다.

교황은 중앙아메리카의 한 주교에게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시성 진행과정에 물었는데, 그 주교는 ‘절대 불가능하며 마치 마르크스주의를 시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교황은 지난 10월 로메로 대주교를 시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