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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김수환 추기경과 역사 의식 / 오세일 신부

오세일 신부(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일 2019-02-19 수정일 2019-02-19 발행일 2019-02-24 제 313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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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김 추기경은 살아 있는 양심으로서 민주화를 향한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버팀목이 돼 주셨고, 그분의 재임 기간 동안 한국천주교회는 미약한 신도수에 비해서 가장 신뢰할 만한 종교로 자리매김했다.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며 부끄러워하고 일본 총독부와 손을 잡고 대동아 전쟁의 군수품을 상납하던 조선 천주교회의 부끄러운 역사를 떠올리면 우리 교회의 변화는 기적에 가까워 보인다.

올해는 또한 3·1운동 100주년이기도 하다. 민족 독립을 제창한 33인의 인사 중에 천주교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 천주교회는 가슴 아파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기실 프랑스 혁명의 진통을 겪은 파리외방전교회가 동아시아 선교를 맡으면서 공헌한 부분이 매우 크지만,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의 ‘성속이원론’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조선인들의 ‘영혼 구령’에만 마음을 쓰고 역사적 현실을 바라보지 못했던 뮈텔 주교는 용산신학교 학생들이 3·1운동 때 시위에 참가해 만세를 부른 것을 ‘불행한 망동’으로 일기에 적었다.

교회가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지 않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할 때, 교회는 민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교회의 존재 가치는 추락한다. 오랜 박해를 겪고 무수한 순교자를 배출한 일본 천주교회에도 천황숭배를 용인하고 침묵하면서 교회의 공적 위상이 실종됐다는 반성이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역사의 한복판에서 가난하고 압제받는 민초의 고통에 동참해야 하는가?

김수환 추기경은 군사 독재의 한복판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을 외면하지 않고 민족과 함께 고뇌하고 함께 십자가를 지셨다. 3선개헌을 강행한 박정희에 맞서서 생방송 중계 미사에서, 그 부당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뇌하며 밤새 잠을 못 이루셨다는 그분의 ‘진정성’에는 겟세마니에서 괴로워하시던 예수님의 피땀이 온전히 서려 있다. 가난한 이들의 현장을 방문해 늘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나누며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지 않으셨다. 그분의 놀라운 리더십은 바로 인간적인 고뇌와 탄원, 끊임없는 성찰과 기도 안에서 이뤄졌던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로 시작하는 사목헌장 1항에서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이 체험하는 인간적 고뇌와 희망의 길이 바로 교회가 세상 안에서 더불어 함께 걸어가야 하는 순례의 여정임을 명시한다. 또 그 역사의 한복판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최우선으로 선택’하는 길이 하느님의 자비, 즉 육화하신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지극한 연민을 따르는 길임을 가톨릭 사회교리는 천명한다. 김 추기경은 그러한 공의회 정신을 온전히 배우고 철저한 삶으로 구현하신 우리 시대의 하느님의 사람, ‘성인’이셨다.

하느님의 백성이 갈망하는 구세사는 임마누엘 예수님을 잉태하신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에 절절히 배어 있다.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요컨대, 이 땅에서의 구세사는 ‘하느님의 주권’이 보다 더 온전히 실현되는 과정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느님이 손수 빚어 만드신 그 모든 인간이 세상의 권력과 재산, 계급과 직위 등을 이유로 무시와 차별당하지 않고 온전히 그 ‘존엄함’을 존중받는 것, 그래서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공동선’을 증진하는 것이다.

1987년 의지할 곳 없던 민초들의 피난처였고 ‘민주화의 성지’로서 사람 냄새 물씬 나던 명동성당이 오늘날 화려한 LED 조명으로 반짝이는 향기 없는 꽃단장으로 채워져 관광객들의 방문지가 된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역사의 한복판에서 세상의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가족으로 품으시며 ‘바보처럼’ 하느님만이 세상의 참된 주인이심을 알려주신 그분의 향내가 몹시 그리워 눈물이 난다.

김 추기경 추모제는 그분의 사진과 유품을 전시하는 기념행사를 넘어 우리 교회가 사람 냄새나는 그분의 삶과 정신을 되새기고 오늘날 이 땅에서 실현시키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 “나는 격동기를 헤쳐 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했을 따름이다.”(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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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신부(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