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화로 만난 하느님] (4) ‘그리스도의 형상’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n이탈리아 로마
입력일 2019-02-12 수정일 2019-02-13 발행일 2019-02-17 제 313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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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과 인성, ‘그리스도의 위격’을 보여주다
우주의 통치자 상징하는 모습
그리스도 이콘 중 가장 오래돼
왼쪽 눈엔 엄격함이, 오른쪽 눈엔 온화함이
세 개 손가락은 삼위일체
두 개는 하늘 땅 의미해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묻자, 시몬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대답했다. 그리스도는 구약시대에는 ‘육신이 없는 말씀’으로 존재했지만, 신약시대에는 ‘육신이 되신 말씀’으로 이 세상에 들어오셨다.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느님이며 완전한 인간이라고 교회의 기본 교리를 선언했다. ‘섞일 수 없고, 변할 수 없고, 나뉠 수 없고, 분리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은 그리스도를 형상화하는 가능성을 열었다. 요한 1서의 첫 구절인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이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은 “우리가 형상으로 만드는 분은 육신으로 오시어 지상에 보이셨고, 형언할 수 없는 선하심으로 사람들 가운데 사셨고, 육신의 본성과 두터움과 형태와 색깔을 취하신 육신이 되신 하느님, 바로 그분이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성화(聖畵)에서는 말씀이 사람이 돼 오신 참 하느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판토크라토르’, 6세기경, 납화법, 이집트 시나이 성 가타리나 수도원.

■ ‘완전한 하느님’과 ‘완전한 인간’의 그리스도

오늘날까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 이콘은 6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이집트 시나이의 성 가타리나 수도원에 보관돼 있다. 뜨거운 밀랍에 색상을 입혀 그림을 그리는 납화기법을 이용한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형식의 그리스도다. 그리스어(크라테오, krateo)로 만물을 지배하는 군주라는 의미의 ‘판토크라토르’는 하느님이 자연을 에워싸고 돌본다는 의미로 우주의 통치자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입었던 붉은 자주색 튜닉 상의에 숄의 일종인 짙은 푸른색 히마티온을 두르고 있다. 히마티온의 푸른색과 튜닉의 붉은 자주색은 그리스도의 천상적인 신성과 지상적인 피의 수난인 인성을 상징한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의 결합 즉 삼위일체를 암시한다. 가끔 그리스도의 의상은 왕과 황제보다 높은 지위라는 의미에서 금빛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리스도는 오른손으로는 인류에게 축복(인성의 상징)을 주고, 왼손에는 귀한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경(신성의 상징)을 들고 있다. 오른손의 세 손가락은 삼위일체를, 나머지 두 손가락은 하늘과 땅의 결합을 상징한다. 정면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신성과 인성의 결합은 더욱 분명히 보인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무표정하고 엄숙하나 상당히 사실적인데, 이것은 이콘 도상학의 중요한 특성인 고요와 관조, 평정, 침묵을 상기시킨다.

두 눈의 차이는 하늘과 땅, 즉 그리스도의 두 본성인 신성한 면과 인간적인 면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우리를 바라보는 약간 눈썹 끝이 올라간 그리스도의 왼쪽 눈의 표정은 엄격하다. 이는 ‘완전한 하느님’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반면, 하늘을 바라본 그리스도의 오른쪽 눈의 얼굴 표정은 온화하다. 이는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완전한 하느님과 완전한 인간으로 드러낸 그리스도의 얼굴은 금빛 후광과 이콘 맨 위 양쪽 모서리의 여덟 개 광선의 금빛 태양으로 더욱 빛나고 있다.

안젤로스의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일부), 1450년경, 목판에 템페라, 그리스 크레타.

■ 빛이신 그리스도

빛나는 영광을 의미하는 후광은 하느님과 긴밀한 관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흐르는 하느님의 빛을 의미한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신”(2코린 4,6) 것으로, 그리스도의 머리는 둥근 구슬로 장식된 금빛 후광에 둘러싸여 있다. 후광 안에는 큰 십자가가 이중의 붉은 선으로 그려 있고, 십자가 날개에는 붉은 점과 선으로 표시된 십자가 장식이 있다.

그러나 이후 작품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의 후광에는 십자가 모양과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 문자 ‘O Ω N’(오 온)이 들어간다. 이것은 하느님이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알려준 이름으로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라고 번역된다. 이 이름은 하느님만이 스스로 존재하고, 생명의 원천이며 십자가의 죽음으로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생명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어깨 위 양옆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어 약자인 IC, XC가 쓰인다. 시나이의 ‘판토크라토르’ 이콘의 그리스도 두 어깨 위로도 희미하게 당시의 글씨체로 예수(ΙΣ) 그리스도(XΣ)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참 임금이요 왕으로서 이 세상에 온 그리스도는 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인 인간성과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모습을 기품 있는 권위로 극명하게 나타낸다.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와 긴밀한 일치를 이루고 영원한 생명의 빛을 얻기를 청한다.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n이탈리아 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