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그리운 눈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9-02-12 수정일 2019-02-13 발행일 2019-02-17 제 313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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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참으로 눈이 박합니다. 1월에는 눈다운 눈이 한 번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따끈한 커피를 벗삼아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머나먼 추억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거기에 샹송가수 살바토레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를 들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눈하면 1998년 1월이 떠오릅니다. 그 당시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근무했었죠. 퇴근 무렵 한두 방울씩 날리기 시작한 눈은 시간이 지날수록 폭설로 변했습니다. 부대에서는 장병들이 순번을 정해 눈을 치웠습니다. 제설작업의 우선순위 1번은 물론 비상출동용 항공기 주위와 비행로입니다. 비행장이라고 해도 변변한 제설장비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순전히 인력에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장병들은 폭설이 내리면 한숨을 쉬곤 했었지요.

눈이 그친 쾌청한 설국의 아침! 전화기에 불이 났습니다. 전방지역 고지 및 격오지 부대가 고립된 것입니다. 폭설로 인해 보급물자를 싣고 오갔던 군사도로는 모두 통행금지가 내려졌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이 먹고 사는 문제였지요. 긴급하게 물자 공수 임무가 부여됐습니다. 우리는 즉시 항공기 점검을 완료하고 공수할 물건을 가득 싣고 기지를 이륙했습니다.

헬기는 민간인 통제선을 지나 철책선 바로 아래 헬기장으로 향했습니다. 순백의 세상, 인간의 발길이 끊긴 미지의 세계! 야생동물들이 아침의 고요한 정적을 깨고 날아가는 헬기 소리를 듣고 놀라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던 철책 근무 장병들은 헬기 소리를 듣고 달려 나와 손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싣고 간 화물을 건네주고 이륙하자, 장병들은 항공기를 향해 모두 거수경례를 하며 고마움을 대신했습니다. 가슴 가득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폭설로 인해 고립된 오지 장병들에게 헬기 소리는 어쩌면 한 줄기 생명의 빛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장병들의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식량은 필수적입니다. 그렇기에 매일 식량과 부식을 싣고 오갔던 차량의 운행금지는 절망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그 절망의 순간, 헬기를 이용한 식량 보급은 장병들에게는 구세주 역할을 했겠지요.

인간은 육신의 생명과 더불어 영혼의 생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육체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지만, 영혼의 생명을 가꾸는 데는 소홀합니다. 영혼이 메마른 인간은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얻어 마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우리가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