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맑음과 어둠 / 나기철

나기철(프란치스코·시인)
입력일 2019-02-12 수정일 2019-02-12 발행일 2019-02-17 제 313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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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시계처럼 고단한 것은 없다/ 인간들 또한 그러하다/ 아침이오, 저녁이오/ 또각또각 참으로 고단하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것들의 하늘/ 잃어버린 것들의 신화// 다시 그리하여 잃어버린 것들의 밤// 그래도 오늘은 맑은 소프라노의 하느님이/ 아침 노래를 하고 있다’(최승자, ‘맑은 소프라노의’)

나는 지금 어느 작은 성당에 와 앉아 있다. 뒤에서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네모난 벽시계다. 의식을 거기에 집중하자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온 방 안은 시계 소리로 가득 찬다. 그 소리는 성모상 주위로, 제대 위로, 예수상 위로 날아다닌다. 그러다 어떤 것들은 지레 떨어진다.

벽에는 예수의 고난을 조각한 ‘14처’가 붙어 있다. 나는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14처를 하나씩 훑어보며 그를 생각해 본다.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로 시작해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로 14처는 끝이 난다.

그 뒤는 어떻게 됐을까. 교회에서는 그분이 다시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엄청난 고통 후에 또 엄청난 기쁨이 왔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그냥 그걸 믿기로 한다.

이 고통의 시인에게도 아침은 온다. 와서 환히 빛난다. 밤이 가고 아침이 온다는 것은 환희다. 이 시에서 전반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가면을 쓰고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인간의 고단한 삶, 그 결과 하늘과 신화와 안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저 시계처럼 힘들다. 예수처럼 벽에 매달려 쉬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맡은 일을 해야 한다. 잠시라도 긴장의 줄을 놓으면 뒤처지고, 끝내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질지 모른다.

그리하여, 그리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걸까. 그래도 다시 환한 태양이 뜨는 아침이 온다.

어느 소프라노의 맑은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조금 흐리지만 이런 아침엔 하느님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아침이 있다.

예전 학교에 있을 때, 어느 오후 막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햇빛들이 어디론가 도망을 가버려서 날이 어두워졌다. 창밖을 보니 멀리 산 아래 능선 위에만 빛이 있을 뿐 사위는 전속력으로 어둠이 몰려왔다. 마치 하늘에 해가 둘이 나타났다는 신라 향가 ‘도솔가’에서처럼 무슨 변괴가 있을 것만 같았고,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 삶에서 어둠의 순간들은 때때로 다가온다. 그 어둠에 대항하려 해선 안 된다. 어둠 속에서는 깨어나 있어야 한다.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그 어둠과 맞서 삿대질을 해 봐야 소용이 없다. 어둠 속에서는 그냥 무릎을 꿇고 그분에게 기도를 드리는 수밖에는 없다.

어둠 속에서는 저 무수히 울려 퍼지는 종소리들도 모두 무릎을 꿇는다. 종소리는 첨탑 높은 곳에서 울려 퍼지지만 그렇다고 종소리가 군림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가 가장 낮은 곳에 계셨듯이 종소리는 울리는 순간 지상의 가장 비참한 이들에게로 내려간다. 그리하여 그도 하느님께 무릎을 꿇는다.

그 어둠 속에서 나도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었다. 나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라며, 또 이 땅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라 갈구하며.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기철(프란치스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