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베트남과 탈 이데올로기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2-12 수정일 2019-02-12 발행일 2019-02-17 제 313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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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연휴 기간의 마지막 날이었던 2월 6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의회에서의 신년 국정 연설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27일, 28일 1박2일로 베트남에서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 장소가 베트남이라는 점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많은 언론들에서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라는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이후, 1995년 미국과 수교했으며, 이후 상당한 정도로 경제적 발전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북한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지만 필자는 베트남이 주는 또 다른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19세기 이후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군이 주둔했다. 그런데 일본이 패망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은 프랑스와 독립전쟁을 치렀고,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해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북위 17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됐다. 이어 1960년부터 북베트남의 지원 하에 남베트남의 베트콩은 미국과 전쟁을 했다. 1973년 파리 평화협정으로 미군이 철수하고, 1976년 북베트남 중심의 통일 국가가 됐다.

그런데 통일된 베트남은 1979년,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당시 중공)과도 전쟁을 했다. 이렇듯 베트남의 현대사는 프랑스, 미국, 중국 등 세계 열강들과의 전쟁으로 점철돼 있다. 그렇지만 현재 베트남은 전쟁의 상대방이었던 국가들과 모두 수교하고 경제 협력을 하고 있다.

과거 우리는 분단국인 베트남과 독일의 통일에 대해 ‘독일 통일, 월남(남베트남) 패망’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러한 표현은 전형적으로 냉전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은 ‘도이모이’ 이후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거부하고, 전쟁의 상대였던 국가들과 화해·협력을 통해 자국의 발전을 이룬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베트남이라는 것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과거 냉전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접근을 뛰어넘는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남북으로 분열돼 앗시리아의 위협 속에서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유다 왕국에서 예언자 미카는 ‘그들은 먹을 것이 있으면 평화를 외치지만 저희 입에 아무것도 넣어 주지 않는 이들에게는 전쟁을 선포한다’(미카 3,5)며 백성을 잘못 이끄는 예언자들을 꾸짖었다. 그렇지만 ‘그분께서 수많은 백성 사이의 시비를 가리시고 멀리 떨어진 강한 민족들의 잘잘못을 밝혀 주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미카 4,3)는 말씀을 전했다. 이데올로기를 넘어 한반도 평화를 향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 하는 지금,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하는 말씀일 것이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