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독립운동’에 한국교회 방관하지 않았다

입력일 2019-02-12 수정일 2019-02-12 발행일 2019-02-17 제 313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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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구로 인근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운동.’ 3·1운동의 백과사전식 정의다. 3·1운동 당시에 한국천주교회는 무엇을 했는지, 천주교의 행보를 묻는 질문이 3·1절 즈음에 잇따른다. ‘일본제국주의 만행에 저항하는 대열에 한국천주교회도 이탈하지 않았다’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일제는 1910년 국권을 강탈한 후 기본권 박탈 등 수많은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항거하는 우리 민족의 저항도 만만찮았다. 본지가 개최한 3·1운동 100주년 기획 좌담에서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은 “운동 참가자가 100여만 명, 이는 당시 인구의 6%에 달한다. 여기에 수만 명에 이르는 천주교 신자가 빠졌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당시 한국천주교회를 이끌던 선교사들이 교회 존속과 선교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정교분리정책’을 폈지만, 이와 상관없이 신앙 선조들의 외침은 결코 작지 않았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나온 독립선언서가 200여 개라고 한다.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에 신자가 없다고 해서 천주교가 독립운동에 팔짱만 끼고 있었다고 판단해선 안된다. 안정근(치릴로)이 대표로 서명한 ‘2·1 대한독립선언서’도 있고 대구 성유스티노신학교 신학생들과 서울 예수성심신학교 신학생들의 만세운동도 있다. 분명 더 있을 것이다.

주교회의 평신도기금운영위원회가 독립운동에 참여한 교회 사례들을 모집한다고 한다. 다소 늦은 감은 들지만 다행이다. 바른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한 치의 주저함이 있어선 안된다. 모든 신자들은 이러한 교회 노력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천주교회의 친일행각’ 운운하는 말에 더 이상 기죽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