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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아무리 잘못했어도 해명 기회는 주어야 / 김지영

김지영 (이냐시오) 전 경향신문 편집인
입력일 2019-02-12 수정일 2019-02-12 발행일 2019-02-17 제 313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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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⑨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 방어권리가 있다.

자신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스스로 지키려고 하는 것은 천부의 권리이며 동시에 정당방위이다. 당연히 법률에도 그 근거가 있다. 정당방위와 관련해 우리 형법 제21조 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취지에서, 비록 중죄를 저질러 재판에 넘겨진 범죄자라 할지라도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진술기회를 준다. 또 아이가 잘못해 어른이 야단을 칠 때에도 아이에게 자기변명을 할 수 있는 틈을 주어야 한다.

언론보도의 경우는 어떨까. 잘 알려진 대로 ‘감시와 비판’은 언론의 중요한 기능이다. 그중에도 공인이나 공공의 문제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거의 무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언론자유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제한하고 있고 이에 따라 형법상 형사 처벌과 민법상 손해배상청구도 따른다.

언론윤리는 비판 기사에 대해 일정한 제약을 두고 있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 보도준칙⑤(답변의 기회)가 대표적이다.

“보도기사가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비판적이거나 비방적 내용을 포함할 때에는 상대방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고 그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때문에, 공인에 대해 거의 무제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언론이 (현행법도 어기지 않고) 공인을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아 윤리적으로 제재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지난해 7월 9일의 새전북신문 「핵심간부 10여 명 책상 빼앗고 무보직 발령」 제목의 기사에 대해 ‘주의’ 조처를 내렸다. 다음은 신문윤리위원회의 제재결정 이유다.

― 이 신문은 권익현 부안군수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사에서 핵심 직책에 있던 10여명의 팀장을 무보직 발령 낸 것이 보복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갑질을 넘어 학대 인사”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에게 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것”이라는 전 현직 간부의 발언을 인용하며 비판적으로 기술했다. 권익현 군수나 부안군 측으로부터 인사의 배경 설명이나 해명을 들어 기사에 반영함으로써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어 보이지만,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

요즈음 당사자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보도는 너무 많다. 이는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에 대해서만 알고, 당사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매체와 기자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언론매체로부터 이처럼 일방적으로 비판을 받았다면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등을 청구할 수 있다.

다음은 또 다른 사례다.

일간스포츠의 지난해 3월 15일자 「“축구협회는 K리그 잘되는 꼴 못 본다”」기사와 그 제목이 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처를 받았다.

일간스포츠의 위 기사는 2개면에 걸쳐 축구협회를 비판했다. 기사는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이 지난해 10월 19일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히딩크’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는 바람에 이날 오전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한국프로축구연맹 수퍼매치 공식 기자회견이 이슈에서 밀려났다고 지적했다. 또 이 기사는 ‘협회는 연맹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협회는 연맹의 희생만 강요한다’ ‘협회는 은연중 K리그 잘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협회는 연맹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대표팀과 월드컵에만 집중한다’ ‘협회 청사진에 K리그는 없다’고 비판했다. 익명의 K리그 종사자 말을 인용한 이 비판은 하나같이 축구협회의 이미지와 신인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것들인데도 당사자인 축구협회 해명이나 주장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신문윤리위원회는 밝혔다.

비판받는 이에게 자기 방어를 위해 해명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보도윤리 이전에 기본적 인권의 문제다. 혹자는 사실관계를 조작하지 않았으므로 가짜뉴스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뉴스도 되지 못하는 이런 ‘비진실뉴스’는 가짜뉴스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인 정확성과 객관성, 공정성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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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이냐시오) 전 경향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