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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기획] ‘그곳에 가톨릭교회도 있었다!’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19-02-12 수정일 2019-02-13 발행일 2019-02-17 제 3132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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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3·1운동, 보다 객관적 평가 필요
전국 100만 명 참여한 민족운동 민족대표 33인에 이름 없을 뿐 신자들 활동 없었다 보기 어려워
선교 자유 위한다며 일제 동참한 당시 교회 모습 반성과 참회 필요

“한국교회도 3·1운동에 참여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교회 지도부가 만세운동 참여를 금지했고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벌어졌던 만세운동 당시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에 천주교 신자가 한 명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당시 만세운동은 서울뿐만이 아닌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또 전 국민적으로 벌이던 운동이니만큼 천주교 신자들도 당연히 참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사편찬위원회 조광(이냐시오) 위원장은 2월 9일 본지가 마련한 ‘3·1운동 100주년 기획 좌담’에서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도 기미독립운동에 당연히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장은 “3·1운동은 1919년 2~5월 한반도 거의 모든 곳과 당시 조선인이 살고 있던 외국의 거의 모든 곳에서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강점한 일에 대해 저항하며 일어난 독립운동이었다”면서 “당시 1760만 조선인 중에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운동에 수만에 이르는 천주교 신자가 빠졌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 위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계는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을 당시 일어났던 일련의 운동 중 가장 대표적으로 봤기 때문에 3·1운동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당시 독립운동은 3월 1일 서울에서 전국으로 번져나간 것이 아니라 전국과 외국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난 운동이었다.

조 위원장은 “3·1운동은 민족 전체의 운동이었고, 서울서 열린 만세운동에 서명한 33인만의 운동이 아니었다”면서 “민족대표 33인에 천주교 신자가 없다고 해서 천주교가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1919년 2월 1일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에는 39명이 서명하는데 안중근(토마스) 의사의 동생 안정근(치릴로) 등도 대표로 서명하고 참여했다. 1919년 3월 5일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학생 60명은 만세운동의 소식을 듣고 운동장에 모여 교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독립가’를 불렀고, 서울의 용산 성심신학교에서도 3월 23일 일부 학생들이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하지만 당시 교회 지도층의 판단력과 식별력에 한계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특히 조선교회의 프랑스 주교들은 일제를 합법적인 정부로, 조선을 일본의 한 부분으로 인정했다. 따라서 독립운동을 반정부운동으로 단정했던 것이다.

당시 선교사들이 이런 정책을 편 것은 이 땅에 교회를 존속시키고 선교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처참한 박해를 경험했던 조선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제의 종교정책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교사들은 한민족의 운명보다는 교회의 운명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주교회의 홍보국장 안봉환 신부는 “교회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명분 아래 교회 지도자들은 해방을 선포하여야 할 사명을 외면한 채 신자들의 독립운동을 금지했고, 나중에는 일제의 침략 전쟁에 동참할 것을 권고하기까지 했다”면서 “민족의 현실적인 고통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비통한 마음으로 반성하고 참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왜 그동안 3·1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을까? 바로 한국교회사 연구가 박해시대 교회사에 너무 치중해 일제강점기 시대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 위원장은 “천주교회가 게토(격리구역)처럼 동떨어진 섬에 갇혀 지낸 것이 아니다”라면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조건 아래 천주교가 그 과정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주교회의(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연구 논문을 공모하기로 했다. 한국교회가 개인·조직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례를 발굴하고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독립운동에 관련된 한국교회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다.

주교회의는 이메일(cafl@cbck.or.kr)로 3월 29일까지 A4용지 5매 내외의 연구계획서를 접수받고 있으며, 4월 중순 심사결과를 통보할 예정이다. 논문 선발자는 11월 1일까지 최종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논문 선발자에게는 500만 원의 논문 집필비가 지급된다.

※문의 02-460-7519, 이메일 cafl@cbck.or.kr (주교회의 평신도기금운영위원회)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