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오병이어의 기적’은 오늘도 계속돼야 한다 / 현재봉 신부

현재봉 신부 (제2대리구 목감본당 주임)rn
입력일 2019-02-12 수정일 2019-02-12 발행일 2019-02-17 제 313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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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경 중국에서 선교사제로 활동 중 허베이성의 셴셴교구의 사제서품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이곳은 문화혁명기의 그 엄혹한 시절에도 교우들이 사제들을 보호하면서 미사가 한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만큼 교우들의 신심이 깊은 곳이다. 중국 천주교회 내에서는 드물게 출판사도 운영해, 교회 내 많은 교리서와 신심서적을 낼만큼 저력도 지니고 있다. 아울러 자체 소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을 만큼 사제성소의 열의는 전국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서품식의 독특한 퍼레이드였다. 마을입구에서부터 줄지어 성당을 향해 가는데 제일 앞에 흥겨운 브라스밴드가, 그 뒤에 전통의상 치파오를 입은 자매들이 대오를 갖춰 춤을 추며 가고, 그 뒤에 수도자들, 끝으로 사제단 순으로 입장했다. 교우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행렬이었다.

성대한 서품미사가 마쳐지고 피로연이 이어졌다. 대략 2000명 쯤 될 만한 이들의 식사가 시작됐다. 식사메뉴는 참으로 단촐했다. 성직자, 신자들 예외 없이 허베이 전통의 소가 없는 만두와 고깃국, 그리고 수박 한 조각이 전부였다. 가난한 시골교구의 피로연이었지만 그들만의 자긍심과 품위가 있었다. 그리고 청빈하고 겸손한 주교님과 사제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했다.

서품식이 있기 전 이웃한 성당에서 이틀간 지냈다. 그 성당 교리실 뒤에 커다란 중국식 가마솥이 여러 개가 걸린 야외 주방이 있었다. 그 주방 흙벽돌엔 큼지막하게 ‘오병이어’란 단어가 씌어 있었다. 하루에 두 끼 식사 밖에 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그들이었지만 신심만큼은 최고였다. 성당 종탑에서 새벽 5시에 종이 울린 뒤 400명 가까운 신자들이 함께 모여 조과(아침기도)를 바치고 새벽미사를 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이곳은 중국 전체 교회에 있어 허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성직자 수도자 성소가 해마다 나오고 있다. 그 이면에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박해를 무릅쓴 헌신이 한 몫을 하고 있고, 온갖 핍박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잃지 않고, 그 자녀들에게 전수하고 살아가는 평신도들의 열성이 그 원동력이 되고 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 한 가족의 몫을 내어 놓는 것에서부터 5000명을 먹인 기적은 시작될 수 있었다. 한 사람, 한 가족의 봉헌이 기적을 낳은 것이다. 나는 오늘 내 몫을 기꺼이 교회와 세상을 위해 내 놓고 있는가? 나의 시간과 노력, 나의 재능을 교회 안팎에서 활용하고 봉사하고 있는가?

오늘도 오병이어의 기적은 계속돼야만 한다. 물질·황금만능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신체적·영적 비만 상태에 빠져 있고, 나눔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세상의 허파가 되어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듯, 자신의 오병이어를 기꺼이 내 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영적 허기와 갈증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봉 신부 (제2대리구 목감본당 주임)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