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진리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사랑의 삶을 산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19-01-29 수정일 2019-01-29 발행일 2019-02-03 제 3131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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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일
제1독서 (예레 1,4-5. 17-19)  제2독서 (1코린 12,31-13,13)  복음 (루카 4,21-30)

연중 제4주일의 말씀을 듣는 우리는 위대한 예언자의 구원의 행적을 보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해주는 향주덕(믿음, 희망, 사랑) 가운데 사랑이 으뜸임을 새깁니다. 예수님의 고향방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진리 자체이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믿음을 통해 올바른 관계를 맺고,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며, 주님의 계명인 사랑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출생 이전부터 주님께서 성별하시어 민족들의 예언자로 세운 예레미야는 벤야민 출신 사제 힐키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절박한 시대인 예루살렘의 함락과 바빌론 유배를 당한 민족들의 위기와 유다왕국 종말의 난국을 예언합니다. 여기서 민족들이란 유다의 주변국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이집트 등 이민족을 포함한 말입니다.

유다의 요시아 왕 집권 13년(기원전 627)에 그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립니다. 예언자의 삶에는 언제나 시련과 고통이 따르지만 부패한 세상을 고발하고 쇄신의 뜻을 전하는 사명을 맡기십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보호하시기에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자인 유다의 임금과 대신은 물론 나라 백성들에게 맞서 당당하게 말씀을 전합니다.(제1독서)

코린토 교회를 사랑하는 바오로 사도는 교회의 분열 소식을 듣고(1코린 1,11),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임을 일깨웁니다. 주님 향한 믿음, 희망, 사랑 속에 주님과 올바른 관계가 계속되는 ‘사랑의 길’을 밝힙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시어 자유로운 선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기쁜 삶을 살게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은사에 힘입어 천사의 언어를 구사해도 사랑이 없으면 요란한 징이나 꽹과리 소리에 불과하며, 예언의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큰 믿음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며, 심지어 모든 재산을 나누고 몸마저 바치는 자기희생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고 역설합니다.(1코린 13,1-3)

나달의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예수’.

사랑이 무엇이고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를 열다섯 개의 동사로 하나하나 열거합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리며,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도, 뽐내지도, 교만하지도, 무례하지도, 자기이익을 추구하지도, 성을 내지도, 앙심을 품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가 아닌 진실을 두고 기뻐하며, 모든 것을 덮어주고, 믿고, 바라며, 견디어냄을 가르칩니다.(1코린 13,4-7) 예언이나, 신령한 언어, 부분적 지식과 같은 카리스마와는 대조적으로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 영속성을 지니고 일치를 이루게 합니다. 사랑이 성숙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비와 사랑을 온전히 알게 됩니다.(1코린 13,8-13)

복음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무슨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일까요? 바로 지난 주일에 우리가 들었던 구절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주님의 말씀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거나 귀를 기울여 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이방인일지라도 말씀을 받아들이면 듣는 가운데 이루어져 주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이 완성된 때를 알리는 희년을 선포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고향 사람들은 모두가 놀라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4,22) 하고 의아해 합니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요? 고대 지중해 문화의 한 단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누구나 출생을 연고로 부모의 신분과 명예를 계승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열린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을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만 여기는 고정관념에 빠져 믿지 못합니다.

가족의 명예인 가업(목수)을 이어받지 않으신 예수님은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보아라”(루카 4,23)라는 말로 고향사람을 더욱 놀라게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과학적 의료시설도 없었거니와 바이러스 같은 병원균을 알지도 못했기에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능력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서 이방인들에게 보여 주신 기적들을 바랐던 고향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에 적개심을 불태웁니다. 위대한 예언자도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편견이 지배하는 고향에서는 치유활동을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이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예언자로 묘사됩니다. 엘리야가 가난한 과부 사렙타에게 베푼 기적(1열왕 17,8 이하)과 엘리사가 나아만의 나병을 치유(2열왕 5,1 이하) 해주는 이야기에 대한 루카 복음사가의 기록(루카 4,25-26)은 여러 가지 목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그들보다 더 위대한 예언자로 묘사하고, 처음에 놀라움을 드러낸 백성들이 분노로 바뀐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주며, 장차 예수님께서 이방인을 중시하여 복음을 선포하심에 정당성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세상에 함께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도전인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자신이 일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지를 회심합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거룩한 성사로 주님과 친교를 이루고 있는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바르게 듣고 있는지, 가난한 이웃에게 다가가는지, 생명의 존중과 공동선의 추구에 노력하는지, 사회 평화와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지, 그리고 겸손한 봉사자로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면서, 주님의 자비와 사랑의 은총을 삼가 청합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