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희수를 맞은 남편에게 / 김문중

김문중 (필로메나) 시인
입력일 2019-01-29 수정일 2019-01-29 발행일 2019-02-03 제 313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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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에 꽃잎은 고요히 타오르는 하얀 그리움과 먼 바다 회상의 배를 띄우고 심연의 마음 영혼을 가라앉히면서 오늘은 고독에다 꿈을 실어 당신께 편지를 써본다오.

‘우리는 어떤 부부일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는데 그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하도록 난 진정 당신에게 성실한 아내였을까? 아픔보다는 아름답고 보람 있었던 날들이 더 많았었는데 나에게 항상 봄을 기다리게 해주며 작은 일에도 고개 끄덕여 주던 당신의 미소와 잔잔한 햇살 꽃다운 젊음과 기백은 멀리 가버리고 이제 황혼을 지나 결혼 47주년, 벌써 당신의 희수, 일흔일곱 세가 됐구려.

자식을 못 낳을지도 모른다던 나를 반려자로 선택한 당신. 신혼여행 후 그 사실을 알게 된 시부모님은 화를 내시며 2년 동안 기다려도 자식 못 낳으면 이혼시키겠다고 하시던 시댁식구들, 그땐 너무 무섭고 서럽고 숨이 막히고 앞이 캄캄했던 순간이었다오.

그런 나에게 3개월 후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 감사합니다. 하늘이 준 선물입니다” 하고 요셉과 시몬이 태어날 때마다 너무 기뻐하며 “여보, 우리 재산 목록 1호는 요셉이고, 2호 시몬이야”했지요.

“정말 고맙고 수고했고 감사하오. 이젠 세상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어. 내가 할 일은 당신이 저 두 아들 잘 키우도록 돈 많이 벌고 성실한 가장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남편이 될 거야. 알았지” 맹세하던 당신의 모습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동안 당신의 수고와 감사가 너무 많았었는데 그 행복했던 순간을 까맣게 잊은 채 세상에서 나만 아들 난 것처럼 큰소리치면서 애들한테만 신경을 쓰는 그런 어리석고 철없는 아내로 살았네요. 정말 죄송하구려.

버거운 삶의 무게에 지쳐 처진 당신의 모습과 손이 저리고 엉덩이뼈가 빠지도록 아프고 다리에 힘도 없고 도저히 걸을 수 없다며 지팡이에 의지한 당신의 걸음걸이 그동안 천방지축 그늘에서 철없이 살았구려.

지난해 몇 번을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넘나들며 수술실에 당신을 들여보내고 얼마나 놀라고 앞이 캄캄했는지. ‘이젠 마지막인가. 주님, 저희 가정에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제발 제 남편 안토니오를 돌려주소서. 아직 안 됩니다. 살아 있을 때 좀 더 잘해 줬어야 했는데 아쉬움과 후회가 너무나 많아서….’

“여보, 미안하오.” 당신이 회복실에서 나와 이렇게 말하며 오히려 눈물을 닦아주며 내 손을 잡는 순간 ‘주님 감사합니다. 어떠한 고난도 모든 삶의 암흑에서도 항상 내게 빛을 주시는 주님, 열심히 성실하게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다짐했소.

지난해 여름 견디기 힘들었던 폭염과 심하게 바람 불었던 날들, 아프고 수술받고 병원 신세로 한 해를 마무리한 것 같아 허전하지만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이고 흘러가고 있는 나의 운명인가 하오.

이제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다는 걸 알고 보니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잊고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이젠 내가 당신을 챙겨야만 마음이 편안함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소. 그리고 그 짐을 벗어 내게 덜어주시오. 내 잔소리는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자 하는 거라오. 내가 더 늙고 힘없으면 이 소리도 끝이며 누가 당신 지키고 돌보나요.

여보. 우린 늙었어도 정은 아직 안 늙었지 않소. 삶이 때론 낯설고 힘들고 신비한 것이지만, 신은 목적을 갖고 당신을 내 곁에 있게 했나 보오. 이제 세월이 꽃이 피고 지듯 당신과 남은 황혼은 후회와 연민과 반성을 하면서 올 한 해는 당신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반려자가 되기로 결심하리오. 사랑합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문중 (필로메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