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나의 ‘테오필로스’를 찾았습니까?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rn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를 취득하고
입력일 2019-01-22 수정일 2019-01-23 발행일 2019-01-27 제 3130호 1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연중 제3주일
제1독서 (느헤 8,2-4.5-6.8-10) 제2독서 (1코린 12,12-30)  복음 (루카 1,1-4. 4,14-21)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 사람들을 향한 루카 사도의 남다른 애정을 잘 드러내는데요.

더불어 독서 말씀에서 만나는 느헤미야의 동족 사랑의 깊이와 코린토 교우들을 향한 바오로 사도의 애타는 심정 또한 짙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필히 숙독해야 할 전교 여정의 완성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저는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동족에게 에즈라 사제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는 구절에 마음이 설레는데요. 이야말로 교회가 오래도록 충실히 수행해 온 직무이니까요. 교회야말로 온 세상의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를 위해서 성경을 번역하고 매일매일 강론으로 해석하며 설명하는 일에 온 정열을 쏟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루카 복음의 시작 또한 가슴 뭉클한데요. 우리가 접하는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이 바로 “테오필로스”라는 단 한 사람을 위한 루카의 기록이었다는 사실에 감동하게 되는 겁니다. 루카 사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전교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스란한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 어느 누군가에게 하느님께서 쏟아주신 구원의 은총을 전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큰 노력과 애정을 기울여야 할지 스스로 본을 보여준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루카 사도의 글에서 우리는 테오필로스가 이제 갓 그리스도교에 입문한 새 신자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테오필로스가 이미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적는다고 밝히고 있으니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루카 사도가 테오필로스를 전교한 후에도 꾸준히 복음을 설명하며 테오필로스의 영성이 자라도록 살뜰히 챙기고 보살폈다는 사실을 엿보게 되는데요. 이야말로 우리의 전교 모습의 모자람을 돌아보도록 합니다. 이웃에게 교리를 받도록 권하고 세례를 받게 하는 것으로 다 끝난 것처럼 여기고 이제는 ‘몰라라’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얼마나 큰 허물인지를 깨닫도록 합니다.

전교란 내 이웃의 “테오필로스”를 찾아 나서는 일이며 그 이웃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에즈라 사제처럼 주님의 뜻을 잘 이해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하늘의 작업입니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복음의 기쁨과 사랑을 전하고 또 전해야 합니다. 루카 사도처럼 전교란 한 사람의 테오필로스를 찾아서 복음의 기쁨을 전한 후에도 더 깊이 교감하며 “진실”을 잘 깨닫도록 돕고 또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복음이 들려주는 예수님의 모습에 집중해 보고 싶은데요. 당시 예루살렘과 갈릴래아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했던 곳이었습니다. 특권층의 고장 예루살렘에 비해서 갈릴래아는 소외당한 사람들이 척박한 삶을 이어가던 곳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낙후된 갈릴래아에서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루카 사도는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가셨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날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기록을 읽으신 것이 성령께서 골라주신 것임을 넌지시 일러주는데요.

그날 예수님께서는 그리도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변방으로 향하시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오직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한 걸음을 옮기며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틀림없이 배척당하며 비아냥거리는 수모까지 감수해야 할 상황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더더욱,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난관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이겨내리라 속 깊이 다짐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날 아버지의 뜻에 따라 회당에 가셔서 두루마리를 펼치실 때, 예수님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을 것도 같은 겁니다.

사실 자타가 공인하는 기득권층들에게 예수님의 존재 가치는 절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복음은 자기네 삶의 기반을 흔들어버리는 불편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제거하는’ 일에 거침이 없었던 이유일 터입니다.

때문일까요? 복음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과 낮고 어둡고 소외된 곳에서 외로이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빛이며 희망이며 기쁨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구스타프 도레의 ‘백성들에게 율법서를 읽어주는 에즈라 사제’.

그런 의미에서 오늘 1독서 말씀이 “그 무렵”이라고 줄여놓은 부분이 많이 아쉽습니다. 그 안에는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요. 제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이 부분의 성경을 찾아 읽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수사 궁에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임금의 “술시중을 담당”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왕에게 얼마나 큰 신임을 얻고 있었는지는 예루살렘 도성을 다시 세우겠다는 느헤미야의 계획을 흔쾌히 수락하고 필요한 재원까지 후히 제공할 것을 윤허한 임금의 처사에서 감지되는데요(느헤 2장 참조). 한마디로 특권층이었고 세상 영화에 부족함이 없었던 느헤미야가 “주저앉아 울며 여러 날을 슬퍼”하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간청하는 일이 생깁니다. 하느님의 도성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동족들이 “큰 불행과 수치”를 당하며 지낸다는 소식에 애간장이 녹아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안락을 위해서만 기도하고 간구하는 못난 신앙인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특별히 저는 오늘 독서 말씀 중에서 “그때에 온 백성이 일제히 ‘물문’ 앞 광장에 모여 율법 학자 에즈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오도록 청하였다”(느헤 8,1)라는 부분에 감동하는데요. 그날 백성들이 먼저, 주님의 말씀을 읽어 줄 것을 청했다는 사실,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마운 것입니다.

그때 그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밭도 포도원도 집도 저당” 잡혀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아들딸들을 종으로 짓밟히게” 내어주어야 했던 엄청난 비극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타국의 포로생활을 접고 거의 맨손으로 귀국했던 그들이었기에 도무지 “손쓸 힘”조차 없는 비참한 상태와 마주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저 속수무책이어서 한탄하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 비참한 상태에서도 그들은 누구의 명령이나 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간청했다니, 얼마나 감동인지요? 저는 그날 주님의 눈시울이 촉촉해졌으리라고 감히 짐작합니다. 그 고운 원의에 주님께서도 감동하셨을 것이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계명에 담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실천했던 느헤미야의 삶에서 말씀을 사모해야 할 이유를 배웁니다. 아울러 주님을 직접 뵙지 못했음에도 주님 사랑을 온 삶으로 이해하고 전했던 루카 사도의 글에서 전교의 적극적인 자세를 가르침 받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와 바오로 사도와 루카 사도와 똑같은 주님의 자녀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읽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말씀을 실천해야 하는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나아가 그날 그분처럼 “성령의 힘을 지니고” 살아가는 빛의 존재입니다.

이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면 죽음의 문화가 판치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느헤미야처럼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처럼 구구절절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혼신을 다할 수가 있습니다. 내처 루카 사도처럼 철저한 복음인의 사명감으로 ‘단 한 사람, 테오필로스’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 정성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꼭 그리되어서 우리 모두가 “성령의 힘”을 지니고 “하느님의 집과 그분을 섬기는 일을 위한 덕행”(느헤 13,14)을 온전히 살아내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rn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를 취득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