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70) 괜한 오기 (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01-22 수정일 2019-01-22 발행일 2019-01-27 제 313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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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달 전부터 새벽에 기상 종소리를 듣고 일어날 때면, 혹은 책상에 앉았다 일어설 때면 머리가 어질어질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혼자 속으로 ‘이러다 낫겠지!’ 싶었는데, 갈수록 어지럼증은 심해졌습니다. 그러다 어떤 날은 앉았다 일어설 때에 주변이 너무 핑~ 돌면서, 침대에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병원 갈 생각을 하지 않다가….

어느 날 수도원에서 미사 주례를 하던 중 영성체 후 묵상 후, 마침 기도를 바치려 일어서려는데 또 핑~ 도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제대 위에서 쓰러지지는 않았고…. 미사는 마치고 제의방으로 들어온 후, 내 옆에서 복사를 서던 후배 신부님에게 말했습니다.

“좀 전, 미사 때 휘청하는 모습 봤니? 휴, 하마터면 제대 위에 쓰러질 뻔했어.”

그런데 평소, 나의 건강한 모습만 본 후배 신부님은,

“에이, 강 신부님 연기가 거의 배우 송○호 급이예요.”

이 말을 듣자, 오기가 생겼습니다. ‘어, 진짜 어지러운데. 좋다. 병원 가서 어디가 반드시 아프다는 진단을 받아야겠다.’ 그래서 그날, 1차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에게 상황을 말한 후 3차 병원 진료 의뢰서를 발급받은 후, 3차 병원 진료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내 반드시 아프다는 진단을 받고 말테다!’ 이어 예약 당일, 8시30분 진료라 금식을 하고, 수도원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2시간 정도 거리의 어느 종합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8시20분 정도 병원에 도착했더니 외래 환자분들은 많지 않았고, 시간이 되자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진료실에는 너무나도 선한 모습의 여자 의사 선생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세 달 전부터 있었던 어지러움 증상과 그 밖의 여러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내심 ‘이리 착한 모습의 선생님께서 내 증상을 듣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에게 ‘뇌’의 문제가 아닐까 그런 걱정이 된다는 말까지 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음, 그러면 신부님. 우선 어지럼증을 확인하는 ‘비디오 안진 검사’와 함께 이제 나이도 50대가 넘으셨으니, 예방 차원에서 뇌 촬영을 한 번 해 보시죠.”

나는 어딘가, 아프다는 말을 듣기 위해 무조건 검사에 동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뇌 촬영’ 시간도 잡았고, 생전 처음 듣는 ‘비디오 안진 검사’ 시간을 정했습니다. 그렇게 그날, 아침부터 서둘러 검사 일정을 잡아 시간 맞춰 검사에 임했더니, 12시30분 정도가 되자 모든 검사가 다 끝났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보러 여의사 선생님이 계신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환한 얼굴을 나를 맞이하더니,

“아휴, 신부님. 이석증인데, 어지럼증이 많이 심했겠어요. 우선 다행히도 뇌 촬영 검사에서는 정상으로 나왔어요. 앞으로 치료 계획은 이번 한 주 약을 먹은 후 다음 주에 오시고, 차도가 있으면 약을 줄인 후 그다음 주에 또 오시고, 약을 완전히 끊은 후 그다음 주에 또 한 번 더 오시면 될 것 같아요.”

나는 좀 더 확실한 말이 듣고 싶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석증이 많이 아픈 건가요?”

“예, 그래요. 이것을 치료하지 않고 계속 방치를 하게 되면, 정말이지 뇌질환으로도 갈 수가 있어요. 그러니 앞으로 재발되지 않게 잘 관리하셔야 합니다. 평소 심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시고, 우선 약을 꾸준히 드셔야 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뵐게요.”

진료실을 나오는 순간, 의사 선생님의 다른 말보다는 오직 이 말이 깊게 박혔습니다. ‘뇌질환으로도 갈 수 있는 질병!’ 그런 다음 후배 신부 얼굴을 떠올리며, 어떻게 골탕을 먹일까 궁리를 하였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