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화로 만난 하느님] (3) 양들의 보호자-‘착한 목자’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n이탈리아 로마
입력일 2019-01-22 수정일 2019-01-23 발행일 2019-01-27 제 3130호 1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예수는 목자, 교회는 양 떼에 비유해 형상화
양 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목자
그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양 떼
카타콤 벽화에도 ‘착한 목자’ 그려

예수 그리스도의 생김새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조금 긴 얼굴에 턱수염을 기르고 구불구불한 긴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온 예수님의 모습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화가들이 약간의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예수님을 그린 것이 점차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면서 지금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은 다른 이미지였다. 사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몇 세기가 지난 로마 시대 후기에 지금처럼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초상화 한 장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태양신이나 미트라스의 신들이 지닌 이교도적이고 아름다운 그리스 소년이나 철학자, 헬레니즘의 전통적인 목가적 모습 등으로 표현했다.

‘착한 목자’, 3세기, 프레스코, 프리실라 카타콤, 이탈리아 로마.

■ 카타콤에서 탄생한 신앙의 이미지

최초의 그리스도교 회화는 로마 시대 후기, 카타콤(Catacomb) 벽화에서 탄생했다.

초대 교회 때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부활을 믿었기에 화장이나 옹기장 관습보다는 매장 관습을 선호했다. 일반적으로 카타콤은 로마 시대 후기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 때 피난처로 사용했고 숨어서 전례를 거행하던 임시 집회 장소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인과 이교도 구별 없이 매장됐지만, 점차 그리스도교 인구가 증가하자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지하 무덤이 생겨났다.

카타콤 내부의 벽면이나 석관에는 죽은 사람의 이름과 매장 일자 등을 새겨놓기도 했고, 신앙고백이나 신앙을 상징하는 이미지들과 구약과 신약성경에서 따온 내용을 담은 서술적 이미지들을 새겼다. 신앙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은 고기, 빵, 포도 넝쿨, 공작, 비둘기, 올리브 나뭇가지, 어린양, 배 등이다. 구약성경에서는 요나 이야기, 노아의 방주, 사자 동굴 속의 다니엘, 아브라함과 이사악, 착한 목자와 바위를 치는 모세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라자로의 부활, 그리스도의 세례, 빵과 물고기의 기적 등과 같은 이야기를 선호했다. 이런 다양한 이미지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의 핵심인 종말론적 소망과 부활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카타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착한 목자의 모습을 한 그리스도다. 성경에서는 여러 번 목자와 양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양치는 사람은 목축을 생업으로 하던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목자는 이른 아침부터 양 떼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온다. 이런 목자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양을 돌보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착한 목자로 비유한 것이다.

로마의 프리실라(Priscilla) 카타콤에 그려진 ‘착한 목자’도 양을 이끌고 있다. 수염이 없는 젊은 목자는 짧은 튜닉(허리 밑으로 내려오고 띠를 두르는 옷)을 입고 그리스 조각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전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다.

젊은 청년의 모습은 영원한 젊음으로서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함과 초월성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목자는 양을 어깨에 멘 채, 주머니를 어깨에 걸고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다. 오른손으로는 아래 양들을 인도하고 있다. 지팡이와 그의 손길은 양들을 이끄는 하나의 사랑의 도구다. 시력이 너무 나빠서 방향감각이 없는 양들의 특징상 목자는 소리를 내거나 지팡이로 땅을 치면서 양들을 몰아야 하기 때문이다. 온종일 먹이와 물을 찾아 옮겨 다니는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한다.

좋은 목자란 삯꾼과는 달리 깊은 관심으로 양 떼를 돌보는 주인이어야 한다. 목자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매우 기뻐한다는 비유처럼, 목자는 자신의 양 떼 중 한 마리라도 길을 잃어버린다면 진정으로 염려하며 집으로 들어오기까지 쉴 수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목자이시고, 양 떼는 교회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 10,11)는 성경 구절처럼 실제로 당신 양들을 위해 십자가 위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내어준 착한 목자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양들을 가장 소중한 보물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착한 목자의 주변에는 마치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말씀처럼 두 마리 양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

‘착한 목자’, 5세기, 모자이크, 갈라 플라치디아의 무덤, 이탈리아 라벤나.

■ 목자를 따르는 양 떼

프리실라 카타콤에 그려진 착한 목자보다 두 세기 후에 제작된 이탈리아 라벤나 갈라 플라치디아(Galla Placidia)의 무덤 내부에 장식된 모자이크에서도 여섯 마리 양의 시선이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주변 양들은 한 마리도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고 일제히 그를 바라보고 있다. 각기 다른 양들(사람들, 민족들)은 단 하나의 양 떼를 구성해, 하나의 공동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조화롭게 일치를 이룬다.

모자이크는 마치 낙원의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한없이 평화로운 분위기다. 착한 목자와 함께 있는 양들은 그리스도에게 구원돼 낙원에서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 영혼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리라 연주로 들짐승들까지 감동하게 했던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를 차용했다. 오르페우스의 오묘한 리라 소리에 들짐승들이 감화됐듯이 사람들(양 떼)도 그리스도(착한 목자)에게 감화돼 구원받을 것이라는 의미다.

황금빛 복장에 황제의 모습을 한 젊은 그리스도는 왕 중의 왕을 상징한다. 바위에 앉은 그리스도의 왼손은 수난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쥐고 있고, 오른손은 한 마리의 양을 보듬고 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양 떼(우리)를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셨으며, 양 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착한 목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목자는 양들을 보호하고 세상 어떤 권력과 위협도 그리스도의 손에서 양들을 앗아 갈 수 없도록 약속한다.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n이탈리아 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