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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주적 논란과 안보 패러다임 전환 / 이원영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1-22 수정일 2019-01-22 발행일 2019-01-27 제 313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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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방부가 발간한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해 왔던 표현이 빠진 것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5년이다. 주적 표현은 2004년에 ‘직접적 군사 위협’이라는 말로 대체된 후,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는 ‘심각한 위협’으로 표현이 보다 강화됐다. 그러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으로 다시 바뀌었다.

이번의 국방백서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하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고, 모든 상황에 철저히 대비해 나갈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즉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우리의 적을 규정하면서도 여전히 북한에 대한 경계와 더불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향후 국방정책 방향으로 천명했다.

그렇지만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들은 주적이 북한이라는 규정이 빠진 것에 대해 안보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사실 북한을 우리의 주적이라고 표현했던 시기는 북한이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했던 시기였으며, 어쩌면 북한으로부터 안보 위협을 가장 심각하게 느꼈던 때다. 그러나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북한 비핵화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검증해야 하지만, 작년부터 한반도 안보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변화에 맞춘 향후 국방정책 방향 모색은 당연하다 하겠다.

최근 주일 미군은 홈페이지에 공개된 동영상에서 독도를 리앙쿠르암으로 표현하면서 분쟁 지역이라고 묘사했다. 이는 우리 영토 문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그리고 사드(THAAD)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에서 알 수 있듯이, G2(Group of 2)로 부상한 중국은 강대국 논리에 따라 행동하는 국가다. 반면에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의제로 북한과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안보 문제는 과거와 같이 단지 북한과의 대결로만 한정할 수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의 정세 변화에 모두 개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패러다임 전환기는 여야를 막론하고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다.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변화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큰 길이 생겨 거룩한 길이라 불리리니 부정한 자는 그곳을 지나지 못하리라.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앞장서 가시니 바보들도 길을 잃지 않으리라’(이사 35,8)는 말씀을 믿으며, 패러다임 전환기에 모두 하나돼 평화를 향한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가야 할 것이다.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