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은총의 선물 / 허은경

허은경 (안젤라) 수필가
입력일 2019-01-22 수정일 2019-01-22 발행일 2019-01-27 제 313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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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반가운 전화가 걸려 왔다. 예전에 다니던 본당 성가대 지휘자였다. 뜬금없이 로마를 가자고 했다. 갑작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로마를 세 번이나 가 봤기 때문에 머뭇거렸다. 지휘자도 가 본 적은 있지만, 관광이 아니라 성가와 관련된 무언가가 목적이라 꼭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솔깃해졌다. 긴 세월 동안 성가대원으로 활동한 나다.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가기로 하고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정확한 내용도 잘 모르면서 그 무언가에 참가 신청을 하고 받은 악보로 어설픈 노래 연습을 해 보며 11월 22일 출국했다.

그 무언가는 11월 23일 금요일 오전 9시 바티칸 교황청 ‘바실리칸 홀’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바티칸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숙소에 묵은 우리 일행은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바실리칸 홀로 갔다. 사람들이 무리무리 구름떼처럼 모여들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입구에는 ‘INTERNATIONAL MEETING OF CHOIRS IN THE VATICAN’이라고 적힌 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제야 우리가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를 알았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 성음악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안으로 들어선 홀은 엄청나게 컸다.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심장이 감격의 고동소리로 쿵쿵 울렸다. 금세 홀 안이 가득 찼다. 무대 위에서는 바티칸 전속 합창단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성음악 전문가들이 여러 강의들을 해 주셨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 등 각지에서 토착화된 성가와 악기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셨다.

다음 날인 24일 토요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하고 말씀을 들었다. 교황님과 더 가까이 앉으려고 새벽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우리는 한복을 곱게 입고 갔다. 낮 12시가 가까워지자 교황님이 들어오셨다. 홀 안이 떠나갈 듯 환호성이 우레와 같이 울려 퍼졌다. 교황님은 가운데 긴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축복을 주셨다. 그리고는 무대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말씀하셨다. “성가는 복음화의 첨병이고 성가를 통해 교회가 더욱 활발해진다”는 말씀이셨다. 성가 덕에 교황님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었다.

음악회는 그날 오후 6시부터였다. 현란한 불빛 아래 바티칸 성가대와 관현악단이 함께 웅장한 무대를 꾸몄고, 우리 모두는 검은 옷에 노란색 머플러를 두르고 한마음으로 성가를 불렀다.

주일인 25일에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오전 10시 미사를 봉헌했다. 관람객으로서만 와 봤지, 미사에 참례하고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참례자들은 다 성가대원들이었다. 함께 성가를 부르니 경건하고 평화로운 마음이 들었다. 황홀했다. 미사를 끝으로 세미나 일정은 끝났다.

그동안 나는 성가를 열심히 불러왔다. 하느님께 받은 ‘은총의 선물’이 목소리라 믿어 왔다. 미사 전에는 “노래로 더 많은 교우들이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짧은 기도를 올려 왔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성가대가 오랜 세월 ‘하모니’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특별한 전례 사목자로서 어려움은 크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는 점을 재인식했다. 전 세계 성가대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가톨릭교회의 엄청남도 실감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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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경 (안젤라)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