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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단상] 제주도 한 달 살이 / 최상원

최상원 (토마스·대구 성바울로본당)
입력일 2019-01-22 수정일 2019-01-25 발행일 2019-01-27 제 313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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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림성당 전경(왼쪽)과 제주 김녕성당 기념탑.

제주도는 별칭이 많은 섬이다. 삼다도, 평화의 섬, 환상의 섬 등이다. 평화의 섬 제주도에서 성당과 공소를 순례하며 한 달을 머물렀다. 설렘과 아쉬움이 교차된 순례여행이었다.

순례기간 동안 제주도의 신앙선조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복자와 정난주 마리아 발자취를 더듬었다. 제주교구는 이들의 순교정신과 신앙을 증거한 발자취를 기억하기 위한 성당과 유적지를 건립 보존하고 있었다. 두 분의 행적을 기억할 수 있는 김기량성당, 정난주성당, 김기량 순교현양비와 정난주 묘에는 순례와 참배를 하는 신자가 많았다.

제주도 한 달 살이 동안 제주교구 소속 28곳 성당과 8곳 공소를 순례하면서 받은 은혜와 기쁨은 너무나 크다. 그 가운데 경탄하며 감명을 받았던 곳은 성산포성당, 한림성당 그리고 한원공소였다.

성산포성당은 아들을 일찍 하느님 품에 맡긴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응축된 곳이었다. 작은 아들을 떠나보낸 애절한 어머니의 염원을 큰아들 가족들이 힘과 정성을 다하여 성모동산을 조성하여 주님께 봉헌한 사실이 성당 앞 표지석이 알려주었다. 사랑과 기도로 채워진 성당은 주위 풍광 또한 순례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한림성당은 제주도 건축대상을 받은 외관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성전 입구로 발걸음을 옮기다 뒤를 보는데 자그마한 추모비가 있었다. 추모비에는 임승필 요셉 신부의 약력과 건립과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임승필 신부는 가톨릭 공용 성경 번역 전담자로 소임을 마친 후 지병으로 53세에 선종하였다. 번역작업 과정에 지병이 있었으나 소명을 완수하느라 자기를 돌보지 않아 병세가 악화되어 소임을 마치고 바로 하느님의 품에 안기셨다.

이른 아침 한원공소 자리를 찾아 주위를 살폈지만 머리 위 하늘에 있어야 할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살피는 중에 벽면에 그려진 선명한 십자가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으나 지붕 없는 검은 벽만 보였다. 마침 지나는 동네 주민에게 물었더니 “화재로 전소되어 폐쇄되었다”고 하였다.

순례를 하면서 순교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곱씹을 수 있었다. 피를 흘리는 적색순교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을 거룩하게 살아가는 백색순교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되었다. 제주교구의 사목 중심 가운데 하나인 ‘생태적 증거의 삶을 사는 소공동체’를 실천하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여러 가지 생태적 위험이 다가오는 이때에 환경을 살리는 작은 실천이 순교의 삶과 닮았다고 본다.

제주도 한 달 살이를 경험하며 자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었음은 주님이 주신 은총이었다. 나날이 하느님의 자비 가운데 생활하면서 다른 이에게 보탬이 되는 생활이 습관화될 수 있도록 주님께 간청하고 수호천사에게 빌어본다.

-가톨릭신문 명예기자들이 삶과 신앙 속에서 얻은 묵상거리를 독자들과 나눕니다.

최상원 (토마스·대구 성바울로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