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별기고 / "‘하느님의 일’하는 선교 사제들에게 기도와 후원으로 힘을 보태주세요” / 유주성 신부

유주성 신부 (수원교구 해외선교실장)
입력일 2019-01-22 수정일 2019-03-27 발행일 2019-01-27 제 313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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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1월 마지막 주간을 ‘해외 원조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수원교구도 20여 명의 신부님들이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에서 ‘사랑의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외선교실은 신부님들이 ‘하느님의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한때 “왜 교구 신부가 본당이 아닌 해외 선교지에 나가야 하는가?” “차라리 전문적으로 양성된 선교 수도회를 지원하면 되지 않는가?” 물음을 제기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그런 인식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잠시 지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 벽화에는 옛날 선교사들이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로 파견돼 가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제단 앞에서 파견 전 서약을 하는 모습,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는 모습, 배를 타고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선교사들의 의연함이 그려져 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의 파견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었고, 가족들에게는 그 시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기도와 희생으로 한국에도 200년 전 복음이 전파됐고 한국교회는 오늘날의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십 년 전까지도 우리는 유럽 교회와 미주 지역 교회의 도움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주도적으로 해외 선교를 담당했던 수도회들의 성소자가 줄어들고, 사회의 세속화는 가속되고 물질주의는 만연해지고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우리 모두의 기도와 후원을 통해 지속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15)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수원교구 신부님들이 무더운 아프리카와 남미의 고산 지역에서 세례와 성사를 베풀고,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때로는 의사로, 문맹률이 70%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학교 선생님으로, 가난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우물을 파고, 집 없는 이들을 위해 집을 짓고, 성당을 손수 짓고 고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해외 선교지에서 잠시 휴가를 온 신부님들께 “선교지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음식에 적응하는 것, 언어의 장벽, 무더운 날씨와 불안한 치안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잊혀 가고 있다고 느낄 때가 제일 힘이 든다”고 말합니다.

해외 원조 주일을 지내며 해외 선교사들을 위해, 그리고 가난한 나라 원조를 위해 기도와 후원을 보내주시는 모든 교우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늘 함께하시길 빕니다. 앞으로도 해외 원조와 해외 선교사들을 위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시길 빕니다.

유주성 신부 (수원교구 해외선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