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이제, 잔치가 시작되었다

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rn※ 김혜윤(베아트릭스) 수녀는rn로마교황청립성
입력일 2019-01-15 수정일 2019-01-15 발행일 2019-01-20 제 312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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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일
제1독서 (이사 62,1-5)  제2독서(1코린 12,4-11)  복음(요한 2,1-11)

‘좋은 사회’에 대한 질문은 ‘구원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질문의 사회적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행의 함양으로 좋은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하였고, 아담 스미스는 경쟁과 사유화를 독려함으로써 오히려 자율적 성장이 가능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통해 공동선과 인간의 존엄이 보장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도덕과 윤리가 우선시 되는 사회라 하더라도, 인간 본연의 소신과 양심이 실종된다면 위선적 도덕주의가 조장될 수 있고, 무한경쟁 속에 소유와 소비가 활황을 이루다보면 덕이나 사랑도 사고팔 수 있는 사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공동체 안에 함께 계실 때 그분이 만드신 새 포도주를 마실 수 있게 되고, 혼인잔치의 기쁨과 행복도 가능해짐을 알려줍니다. 연중시기를 시작하면서 교회는,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에 계시게 됨을 ‘표징’으로 하여,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 복음의 맥락

요한복음의 본론은 크게 전반부(1,19-12,50) ‘표징의 책’과 후반부(13,1-21,25) ‘영광의 책’으로 구성되며, 공생활의 첫 장면인 카나에서의 사건은 마지막 장면인 예수님의 십자가상 이야기와 병행됩니다. 성모님이 예수님으로부터 “여인”으로 호칭되고 있고(2,4; 19,26), ‘예수님의 때’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며(2,4; 19,28), 물에 대한 상징이 묘사되기 때문입니다.(2,7; 19,34) 특별히 마지막 십자가 사건 때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음은 카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표징과 명확히 연계된 구도를 드러냅니다.

■ 표징, 영광의 시대

성모님은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자 이를 주인이나 일꾼들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알리십니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아드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알고 계시기에 나온 행동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말씀에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4절)라고 대답하는데, 원래 그리스어 본문을 직역한다면 “그것이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무엇(무슨 상관)입니까?” 정도가 되겠습니다. 믿음과 신뢰를 오롯이 담은 어머니의 요청에 정확히 선을 긋는 듯한 예수님의 태도는, 왠지 어머니와 거리를 두는 것이어서 당혹감을 줍니다. 그러나 이는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성모님을, 생물학적 모성의 관계보다는 진정한 신앙인이며 예수님의 제자로 부각시키려한 의도를 반영합니다. 여기에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지는데, ‘예수님의 때’는 곧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는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당신의 초자연적 능력이나 권한을 과시하기 위해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오직 하느님의 통치와 현존을 알리고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행해집니다. 따라서 그분의 기적과 영광이 드러나는 시기는 하느님의 뜻과 의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시고 받아들이신 성모님께서는 이제 그분께 사건의 전권을 맡겨드리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5절) 하느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신 예수님과 이에 대한 강한 믿음을 드러내신 어머니는 그 존재 자체로 하느님의 영광이 되시고, 그 결과로 위기와 혼란이 파급되던 잔치에 ‘새 포도주’라는 선물을 전달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에 의해 만들어진 좋은 포도주로 혼인잔치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되고, 인류는 이 사건을 ‘표징’으로 진정한 새 신랑(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주(피)로 맺어질 새 계약의 시대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조토 디 본도네의 ‘카나의 혼인잔치’.

■ 내 마음에 드는 여인

새 시대로의 초대는 제1독서에서도 언급됩니다. 유배를 겪어낸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이름이 주어지고, 새로운 신분과 관계가 허락되기 때문입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내부 공동체는 시작부터 서로의 꿈을 방해하고 훼손하는 문제들을 갖고 있었고 이에 대한 해결이 요원해지자 공동체 안에는 서서히 절망과 불신의 분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능력이 없으신 것은 아닌지(이사 59,1) 그게 아니라면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거두신 것인지 질문하게 된 것입니다.(59,11) 이러한 공동체의 불안한 흔들림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 오늘 독서의 내용입니다.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62,1-2) “소박맞은 여인” 혹은 “버림받은 여인”이라고 불렸던 그들은 이제 하느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인데, 그 새 이름은 “내 마음에 드는 여인”, “혼인한 여인”입니다.(4절 참조) ‘새로운 이름’이란 새로운 지위와 신분을 갖게 됨을 의미하기에, 소외되고 버림받은 존재였던 이스라엘은 이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존재로 거듭난다는 선언입니다. 존엄을 상실하고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삶을 버텨왔던 불모의 땅 예루살렘은 이제 새 신부처럼 사랑받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 성령의 작용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은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계실 때에만 발생합니다. 제2독서는 오직 성령의 현존을 통해서 진정한 공동체의 성장이 가능해짐을 알려줍니다. 코린토 교회는 구성원들 각자가 매우 다양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던 공동체였습니다.

바오로는 이러한 다양한 은사(능력)들이 하나의 구심점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룰 때에 진정한 신앙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이 모든 것을 한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1코린 12,4-11) 아름답고 조화로운 것은 결코 우연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그 존재의 삶과 역사의 중심에 계실 때 가능해지는 눈부신 결과인 것입니다.

‘표징’(그리스어 ‘세메이아’). 기존의 것과는 다름을 알리는 신호, 표시, 징조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세례로 시작된 공생활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사건을 ‘표징’으로 하여 이제 “그분의 때”에 돌입했음을 선포합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은 카나에서의 사건을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표징’이라고 규정하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요한 2,11) 카나의 사건은 그저 놀랍고 기이한 행적에 그치는 이벤트가 아니라, 뭔가 이전과는 구별되는 다른 시간, 다른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명백한 징조이며 신호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통찰을 시작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약속된 땅을 잃어버리고 주권을 박탈당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비로소 하느님의 통치를 염원하게 되고,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절박하게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새 시대’에 대한 열렬한 갈망은 오늘 카나에서의 첫 표징을 신호로 하여 발화되기 시작합니다. 이제 시작된 연중시기에는 그 경이로운 표징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해방과 자유의 지평을 확장시켜주면서, 하나하나,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빛을 비추며 소개될 것입니다.

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rn※ 김혜윤(베아트릭스) 수녀는rn로마교황청립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