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37) 해돋이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9-01-15 수정일 2019-01-15 발행일 2019-01-20 제 3129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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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월 1일 새벽이면 설악산 대청봉은 등산객들로 뒤덮인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려고 올라온 등산객들이다. 꼭두새벽에 집을 떠나 도착한 오색등산로 입구에는 입장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등산로의 문이 열리면 산길을 가득 메운 등산객들이 물밀 듯이 대청봉을 향해 올라간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오직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극기 훈련하듯 산을 오른다. 목적은 오직 하나 대청봉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밤하늘별은 불빛에 사라지고 야생동물의 부스럭거림은 등산객들의 시끄러움에 묻혀버린 산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어둠 속 산길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깊이 스며드는 생명의 소리가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 것인지 깨달을 사이도 없이 밀려가듯 올라가는 산길은 지루하기 짝이 없고 힘든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땀으로 흠뻑 젖어서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오른 대청봉은 등산객들로 가득하고 시끄러움은 장바닥을 방불케 한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오직 빨리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밀치고 밀리는 가운데 언성이 높아지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조용히 지난날을 뒤돌아보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휴대전화 치켜들고 사진 한 장 찍으면 끝나는 해돋이다. 해가 뜨고 나면 등산객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내려가고 대청봉은 찬바람 속에 홀로 우뚝이 서서 붉은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대청봉에 올라 빌어야 할 만큼 간절한 바람들이 가득한 삶에서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은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통해서 일 것이다.

삶은 자연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함에도 자연을 함부로 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오직 한순간의 만족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라면 굳이 힘들여 대청봉에 오를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해는 대청봉에서만 뜨는가? 내 집 마당에서 온 마음으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 적이 있는가? 뒷동산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아이들의 속삭이는 소원을 들어본 적은 있는가?

자연에 대한 예의와 염치를 지킬 때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는지 깨닫는다면 대청봉 해돋이는 우리 삶을 얼마나 경이롭고 희망차게 해줄 것인가.

대청봉에 올라 새해 첫날을 맞으며 빌었던 바람들이 이루어지기를 빌 뿐이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