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내 주님의 여정은 멀고도 깊어라 / 홍양순

홍양순 (레지나) 소설가
입력일 2019-01-15 수정일 2019-01-15 발행일 2019-01-20 제 312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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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낼 때, 하느님께서는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을 지나는 길이 가장 가까운데도,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이 닥쳐올 전쟁을 내다보고는 마음을 바꾸어 이집트로 되돌아가서는 안 되지’ 하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백성을 갈대 바다에 이르는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집트 땅에서 올라갔다.(탈출 13,17-18)

어디론가부터의 탈출은 새 세상을 꿈꾸는 의지이리라. 나도 그때 그런 꿈을 꾸었을까. 과연 도달할 곳이 즐겁고 행복한, 좋은 땅일 것이라 진실로 믿었을까.

매 순간 마음을 닦아세우며 형제들의 사고 뒷감당을 해오던 젊은 날, 나는 성전에 홀로 앉아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을 올려다보며 더는 못하겠노라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더 이상 십자가를 못 지겠어요. 벌하시려거든 얼마든지 벌하세요.’ 당돌한 도발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큼지막한 눈물주머니를 지닌 내가 눈가를 적셨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등을 꼿꼿이 세워 뚜벅뚜벅 성당 문을 나서던 장면은 또렷하다. 그럼에도 ‘때가 되면 언제든 다시 불러주세요’라는 말을 잇바디에 꾹꾹 욱여넣은 걸 보면 딱 그만큼의 믿음으로 주님께 여지를 드리지 않았나 싶다.

큰소리를 쳤지만 만만한 주님만 등돌려놓았을 뿐, 나는 여전히 어깨에 얹히는 짐들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짓눌린 무게에 허덕이는 동안 주님이 나를 진짜 벌하시기로 작정이나 한 듯, 딸이 길고 긴 방황을 시작했다. 10여 년,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 딸은 오래도록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진로는커녕 마음의 모서리를 아슬아슬 헤매는 딸을 보며 미움과 원망만 커져 갔다. 목이 메게 꺽꺽거리는 고통을 견딜 수 없던 나는 모든 걸 다 되돌리고 싶었다. 얼른 성당으로 달려가 주님의 등을 돌려세우고 제발 한번만 살려 주십사, 매달리고 싶었다.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습관처럼 달라붙은 두려움도 붙박인 걸음에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차선책으로 집에서의 기도를 택했다. 내세운 명분은 수능을 앞둔 조카를 위한 묵주기도. 10개월을 매일 성모님 앞에 앉아 묵주 알을 굴렸다. 내 두 아이가 고3 때도 하지 않은 기도였다. 그만큼 지쳤고 그만큼 간절했고 그만큼 많이 아팠다.

수능이 끝나고 기도의 구실도 사라져 황황히 앉아 있는 내게 이번엔 주님이 손을 내밀어 주셨다. 성당을 떠난 뒤 남편과 아이들도 줄줄이 냉담하던 터에 혼담 오가던 아들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뜻을 밝혔던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당장 고해실로 달려갔다.

제법 긴 침묵이 흘렀을 것이다. 신부님께 오래 성당을 쉬었노라고 한숨을 숨겨 고했다. 더는 어떠한 고백도 할 수 없었다. 이윽고 신부님의 첫마디 “성당은 십자가를 지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오는 곳입니다. 행복하게 나오십시오.”

주님은 내 십자가의 도전을 똑같이 십자가의 말씀으로 응답해 주셨던 것이다. 주님은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잇바디에 욱여넣었던 겨자씨만한 믿음이 결국 나를 구원하였지 싶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딸아이도 제자리를 잡았고 나 역시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먼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10,52)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홍양순 (레지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