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마음과 경각심’을 읽고

이영숙(안나)
입력일 2019-01-15 수정일 2019-01-15 발행일 2019-01-20 제 312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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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자 가톨릭신문을 읽어가던 중 ‘마음과 경각심’이라는 제목의 강석진 신부님의 글을 읽게 되었다. 어쩜 이리 요즘의 내 마음과 같을까 싶어 신부님께 공감 받은 기분이었다.

그 사연인즉, 지난 12월 중순 나는 만학도로서 대학 4년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내놓고 이제 다음 주부터 ‘나는 자유다!’라는 심정으로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주일을 보내고 월요일에는 누굴 만나고 그다음 날에는, 또 그다음 날에는…. 연말까지 거의 빠지는 날이 드물게 나름의 일정표를 짜두고 있었다. 드디어 나의 일정 첫날! 옛날 한옥을 개조한 나름 운치 있는 식당에서의 첫 모임 첫 식사를 가졌다. 무사히 마치고 방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분명히 들어갈 때 그 깊이를 인지했을 텐데 어이없게 그 문턱에 걸려 발목이 꺾인 것이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지만 별일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제발 그러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나의 간절함과 달리 발의 통증은 급속도로 심해졌다. 몇 개월 만의 친구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병원을 찾았다. 인대 손상과 발목 골절! 한 달 반에서 두 달가량 다리 통깁스!

나의 찬란한 계획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의사선생님의 이런저런 설명도 남의 이야기인 양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통증만큼이나 어이가 없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한 주, 두 주…, 집안에서의 생활도 삼 주째 접어들고 있다. 처음에는 기가 막혀 아무 생각도 하질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현실은 ‘꼼짝마라!’였다.

이 시간도 소중한 시간인데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조금 조금씩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또한 하느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뜻하지 않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고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원망에서 은총으로 넘어오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동안 공부한답시고 소홀히 했던 묵주기도도 바치게 되었고, 사놓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책들도 아무 부담 없이 편히 볼 수 있게 되었고, 아픈 엄마를, 아내를 위한 가족들의 사랑과 배려도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야고 4,15)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다.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한순간도 하느님 은총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나에게 휴가를 주시는구나! 나의 들뜬 마음에 경각심을 주시려고 나의 수호천사께서 이 정도의 사고로 나를 붙잡아 놓으셨구나! 하는 즐거운(?) 결론을 신부님처럼 나도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잃고 나서야 새삼 절실해지는 건강의 소중함도 다시금 느끼고 분명 모든 게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다. 내 두 발로 땅 밟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울지.

이영숙(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