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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복(福)에 관한 영적 성찰 / 오세일 신부

오세일 신부(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일 2019-01-15 수정일 2019-01-15 발행일 2019-01-20 제 312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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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는 새해를 맞으며 서로 서로에게 복을 빌어 줍니다. 그런데 도대체 복(福)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민간무속이나 점복술의 영향으로 재물복, 인복, 사업운 등 뭔가를 ‘소유’하거나 ‘획득’하게 돼 개인의 일신이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행운’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하지만 경제도 어렵고 정치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 혼자만 편안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축복일까요? 우리 함께 ‘축복’의 의미에 관해서 성찰해 봅시다.

우리 한국인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고 스스로들 말하곤 합니다. 한편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부모, 가족, 고향을 잃어버린 ‘상실’의 고통 속에 전쟁의 두려움을 느끼시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끝없는 무한 경쟁 속에서 전쟁 같은 취업 전선에서 고생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소위 386세대로 불리는, 민주화 세대 장년들은 권위주의 시대에 탄압과 고초 속에 항거하며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일조한 부분은 분명히 크지만, 어느새 우리사회의 주요 책임자가 돼 기득권 자리에 올라서 사랑이나 배려 같은 정신적 가치보다는 돈이나 권위와 같은 물질적 힘을 추구하는 자기모순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모두 저마다 치열하게 세상살이를 해나가지만,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의식 속에 영적으로 고갈돼 청년, 장년, 노년들이 서로 통교하지 못하고 깊은 불만이 쌓여있는 걸 느낍니다.

오늘날 무한경쟁의 시대에 무엇이든 경쟁하고 이겨서 살아남아야만 하고 패배자(일명 루저)에게는 자비를 허락하지 않는 신자유주의 복음은 우리 자신의 상처와 한, 결핍과 설움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가진 것’ 없어 무시당했던 한, 그 밑바닥에는 ‘학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부모교육의 공식이 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온당하게 대우받지 못한 한, 영어를 잘못해서 더 높이 오르지 못한 한…. 안타깝게도 학력이 점점 더 높아져도 이러한 한은 결코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처럼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교수들조차 뿌리 깊은 열등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사실 무척 많습니다! 하버드대학 교수라 하더라도 국제 유수 학술지에 파급력이 더 큰 논문을 출판하거나 노벨상을 받은 학자에게는 시기와 질투를 느끼듯, 세상적 ‘인정의 사닥다리’는 무한정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진정 인정받는 축복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세상적 복음이 알려주는 건강과 성공, 재물은 모두 인생살이에 필요하고 좋은 것들이지만, 그것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적 가치일 따름입니다. 참된 축복(眞福)은 하느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나누는 데 있습니다. 성교회에서 가장 큰 복(beatitude)은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지복직관에 담겨있지요! 그 하느님의 나라는 ‘나 혼자만 편안하게 잘 사는 자리’가 결코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입니다.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놀 수 있는 세상은 비현실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모든 인간이 그 존엄함을 인정받고 공동선이 실현되는 가운데 세상의 참된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참으로 거룩하고 축복된 자리입니다.

세상살이에서 우리 몸에 밴 한을 채우기보다 하느님께서 우리 세상에서 못 다 하신 갈증을 채울 수 있는 길이 축복임을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그래서 창조주께서 세상 피조물들을 손수 만드시고 “보시니 좋다”고 말씀하셨던 ‘원초적 축복’(original blessing)을 향해 함께 나아가도록 기도하며 노력합시다! 2019년 새해를 황금 돼지띠라고 부르는데, 참된 부자는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많이 베풀고 나누는 자’라는 금언을 가슴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소유하고 자유롭게 나누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그 무엇에도 / 너 마음 설레지 말라 / 그 무엇도 그 무엇도 / 너 무서워하지 말라 /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 / 인내함이 모두를 얻느니라 / 님을 모시는 이 아쉬울 무엇이 없나니 / 님 하나시면 / 흐뭇할 따름이니라.”(성녀 아빌라의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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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신부(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