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시골 공소의 푸근한 할아버지 / 이승훈 기자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01-15 수정일 2019-01-15 발행일 2019-01-20 제 312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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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취재로 공소들을 방문했다가 아픈 마음을 안고 돌아간 적이 있다. 교통의 발달로 본당에서 주일미사가 가능해지자 신앙선조들의 터전이었던 공소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관리하는 이가 없어 허름해진 곳도 있었고, 인근 농부가 자재를 쌓아놓은 공소도 있었다. 한때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던 곳이 이제는 외딴곳이 됐다.

하지만 얼마 전 취재로 찾은 수원교구 원삼본당 고초골공소에서 신자들이 정을 나누고, 신앙을 나누던 옛 공소의 모습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다. 공소에 온기를 불어넣은 주인공은 바로 수원교구 전임교구장 최덕기 주교였다.

최 주교는 고초골공소에 머물면서 신자들을 위해 매월 피정을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피정을 찾는 신자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들을 위해 피정의 집을 운영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또 공소의 신자들과 힘을 모아 공소발전위원회를 만들고 직접 강사진을 섭외해 공소에서 끊임없이 피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외딴곳이었던 공소가 다시금 기도하는 곳으로, 신자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변모했다.

최 주교의 공소살이가 고초골이 처음은 아니다. 은퇴 후 처음 머물던 산북공소에서는 공소 인근 신자들을 만나며 공동체를 일궜다. 그렇게 신자수가 늘어나면서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자 고초골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최 주교와 만난 신자들은 “시골에서 할아버지를 만난 듯 따듯함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공소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직무도, 권위도 아닌 바로 따듯한 ‘정’이었다. 최 주교는 오늘도 그 특유의 푸근한 미소로 공소를 찾는 신자들을 반긴다.

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