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여성 최초 공군 사관후보생 자치대대장 출신 반정형 소령의 삶과 신앙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9-01-08 수정일 2019-01-08 발행일 2019-01-13 제 3128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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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제 군생활의 가장 큰 버팀목”
첫 부임지서 만난 이들과 함께 14년째 신앙 모임 이어오며 활동
온갖 어려움 겪을 때마다 신앙에 힘입어 극복하게 돼
‘나탈리아’ 세례명 따라 예비 신랑은 ‘아우렐리오’로 세례
“열심한 신앙으로 얻은 큰 은총”

반정형 소령은 “성당과 신앙은 군생활에서 가장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확실히 기대가 된다. 놀랍다.’ 전북 군산 공군 제38전투비행전대(이하 38전대) 재정과장으로 복무 중인 반정형(나탈리아·38) 소령이 군인으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앞으로 더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반정형 소령은 학사장교 114기로 2005년 7월 공군 재정병과 소위 임관 전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반 소령은 공군 장교 임관을 위한 14주간의 기본 군사훈련을 받을 때, 사관후보생 280여 명을 이끄는 ‘자치 대대장’으로 맹활약했다. 여성이 자치 대대장을 맡은 것은 반 소령이 최초였다. 지난해 12월 38전대 재정과장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국군재정관리단에서 전군 유일의 ‘공적 연금 연계 담당자’라는 특이 이력도 쌓았다.

군인이기 전에 천생 가톨릭 신앙인인 반 소령은 첫 부임지인 광주(光州) 제1전투비행단 성요한본당에서 2006년 만난 당시 군종장교 김성은 신부(현 서울대교구 대흥동본당 주임)를 비롯한 장교, 병사, 관사가족 등 신앙의 동반자들과 14년째 매년 정기적인 모임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신앙에 남달리 열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반 소령은 올해 평생의 소원을 이룬다.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성녀 나탈리아의 남편인 아우렐리오 성인을 세례명으로 한 예비 신랑과 혼인성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역시 신앙을 지켰기에 맞이하는 더없이 큰 은총이다.

■ 280여 명 후보생 리더로 역량 발휘

사관후보생 자치대대장은 훈련 중인 사관후보생들을 자치적으로 지휘 통솔하는 총 지휘자다. 남성이 임명되는 것이 당연시되던 2005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반 소령이 자치대대장을 맡아 화제가 됐다. 반 소령은 한국군 역사상 여성 최초 장군인 간호병과 양승숙 준장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현모양처이면서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룬 양 준장의 모습에서 ‘나도 장군이 되면 좋겠다’는 꿈을 품고 군문에 들어섰다. ‘예비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반 소령은 자치대대장 경험과 관련해 “장교는 업무 특성상 실무를 담당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부서장이나 지휘관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그만큼 리더십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시 280여 명의 사관후보생들의 애로 및 건의사항을 수렴해 상부에 건의, 해결해 주고 때로는 대대원들의 불만을 설득을 통해 잠재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대원들이 잘못하면 대표자로 벌을 받기도 했는데 이런 체험은 크고 작은 조직 안에서 리더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계기였다”고 밝혔다.

소위, 중위 시절에는 어려운 상관을 만나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나고 자존심 상하는 일도 겪었지만 그 후 인간적으로 더 어려운 상관을 만나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반 소령은 “당시에는 괴로운 일들이 나를 더 완벽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이고 기적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 느꼈다”고 회상했다.

■ 전군에서 유일한 ‘공적 연금 연계 담당자’ 임무 수행

반 소령은 38전대 재정과장 부임 전 국군재정관리단에서 ‘공적 연금 연계 담당자’로 근무했다. 전군에서 딱 한 사람만이 맡고 있는 보직이다. 직업군인이 복무기간 20년을 채우지 못해 군인연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그 기간을 인정받아 65세 이후 국민연금과는 별개로 복무기간에 해당하는 만큼의 군인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반 소령은 “좋은 제도임에도 생각만큼 가입자 수가 많지 않은 것에 의구심을 가졌고 퇴역 군인들이 이 제도의 혜택을 못 보는 것이 안타까웠다”면서 “제 업무는 늘어나지만 공문 하달, 국방일보 기고, 홍보자료 배포, 홍보 동영상 제작 등을 통해 제도를 알리자 가입자 수가 늘어나 보람을 느꼈다”고 소개했다. “몰랐던 제도를 알게 됐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을 때는 야근을 하면서도 오히려 뿌듯한 심정이었다”고 덧붙였다.

■ 10년 훌쩍 넘게 이어지는 ‘이미않’ 모임

반 소령은 첫 배속지인 광주 제1전투비행단에서 2006년 성요한본당 군종신부로 부임한 김성은 신부를 처음 만났다. 이 때 만난 김 신부와 군인 신자들이 햇수로 14년째 되는 지금까지도 매년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1~2년마다 전국으로 근무지를 이동하는 군인신자들이 만든 신앙 모임이 10년 넘게 지속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약칭이 ‘이미않’, 정식명칭은 ‘이런 미치지 않고서야’다.

반 소령은 “새로운 배속지에서 이방인처럼 지내는 초반 시기에 버팀목이 되는 것이 성당이고 신앙이어서 부대 성당에서 맺어진 인연은 낯선 곳에서 자리잡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며 “‘이미않’ 모임은 제 신앙생활에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나탈리아가 아우렐리오를 만나 결혼하다

유아세례를 받은 반 소령은 부모님 세례명이 실제 부부(즈카르야, 엘리사벳)인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세례명인 나탈리아의 남편 아우렐리오를 만나면 그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소망을 키워 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아우렐리오를 세례명으로 가진 신자를 만난 적이 없다.

처음 만날 때는 비신자였던 예비 신랑이 반 소령의 신앙에 감화돼 스스로 통신교리를 받고 주일미사에 참례하더니 세례명을 아우렐리오로 정했다. 그야말로 순전히 신앙의 힘으로 평생의 소원을 이룬 것이다.

반정형 소령(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이 2016년 7월 소령 진급 기념으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을 방문해 서울대교구 김성은 신부, 전 동료 군인신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반정형 소령 제공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