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천호동 화재’로 돌아본 성매매 여성의 인권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19-01-08 수정일 2019-01-08 발행일 2019-01-13 제 3128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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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창살로 막힌 창문… 불 번져도 달아날 곳은 없었다

2018년 12월 22일 오전 11시4분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성매매 업소에서는 화재가 발생했다. 16분 만에 불은 진화됐지만, 성매매 여성 4명을 포함해 5명이 죽거나 다쳤다. 경찰과 소방당국 등 관계자들은 1ㆍ2차 합동감식을 진행했지만, 최초 발화지점이 1층 홀 주변이었다는 점 외에는 뚜렷이 밝혀진 점이 없다. 5명의 사상자를 낸 ‘천호동 화재’. 이번 사고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그 피해자와 희생자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화재 현장 인근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 소장 이종희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와의 인터뷰, 현장 취재, 자료 조사 등을 통해 이를 알아봤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화재 현장.

■ 피해ㆍ희생 여성들의 인권 얘기는 나오지 않아

“희생당한 여성의 입장에서 이러한 공간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소냐의집은 12월 30일 천호동 화재 희생자를 위한 추모미사를 거행하며 이렇게 밝혔다. 사고 이후 애도는 이뤄지지 않고 있고, 이들의 ‘처지’에 대해서도 아무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면서다. 이날 소냐의집은 화재 건물 앞에서 예수회 박상훈 신부 주례, 김정대·조현철 신부 공동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소냐의집 소장 이종희 수녀는 12월 24일 2차 합동감식에 함께하면서 성매매 여성들이 ‘인간으로서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다는 점을 확실히 알았다고 말했다. 불이 나도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가 마땅히 없었고 화재 예방 시설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수녀는 “건물 구조 자체가 이들을 보호하도록 돼 있지 않았다. 이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였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화재가 난 건물은 1968년 세워졌다. 지상 2층 건물로 1층에선 호객행위가, 2층에선 성매매나 여성들의 숙식이 이뤄졌다. 2층은 6개 방과 화장실 1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 교회 가르침에 반한 ‘인권 불감증’

이 수녀는 성매매 여성들의 이러한 처지가 ‘인권 불감증’에서 비롯된다고 비판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그런 의식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 수녀는 “성매매는 말 그대로 ‘매매’다. 돈으로 성을 사고파는 거래는 성매매 여성을 ‘을’로 여기게 한다. 우리와 같은 하느님의 자녀인 이들을 우리는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교회에서는 성매매 여성을 ‘보살펴야 할 존재’로 가르친다.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의 ‘제1차 거리의 여자들의 해방을 위한 국제 사목회의’ 최종 문서에서도 ‘성 착취와 매춘, 인신매매 모두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여성의 존엄성에 상처를 입히고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명시하고 있다. ‘희생 여성은 대개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움을 호소하는 한 인간이다’, ‘교회는 매춘을 통해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인간 존엄성을 증진하고 그들의 해방과 경제적, 교육적 지원을 주장할 사목적 책임이 있다’, ‘거리의 여자들이 대체 생계수단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국가나 지역 당국과 협력해야 한다’고도 밝히고 있다.

요한 복음 8장 3-11절에서도 예수님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성을 단죄하기보다 용서하고, 회개로 이끄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고 하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이르시면서다.

■ 제2, 제3의 천호동 화재 우려

천호동 화재와 같은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전북 군산 개복동의 성매매 업소 화재 사고로 15명이 숨졌을 때도 비좁은 건물 복도와 쇠창살로 막힌 창문 등이 문제가 됐었다. 2005년 서울 하월곡동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불이 나 5명이 숨졌을 때도 희생자들이 불법 감금된 채 성매매를 강요받은 사실이 밝혀졌었다.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인권 불감증이 계속되는 현실에 이 수녀는 “제2, 제3의 천호동 화재는 또 일어날 수 있다. ‘인권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서로를 편견 없이 대해야 하고, 이들의 삶의 방식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순 없지만, 같은 이웃으로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또 이 수녀는 “‘제 발로 택한 성매매 아니냐’, ‘쉽게 돈 벌려고 성매매 하는 것 아니냐’고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들로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성매매를 해도 돈을 벌기보다는 빚에 허덕인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우리도 이들을 편견 없이 바라봐야 한다”고 호소했다.

2018년 12월 30일 봉헌된 ‘천호동 희생자를 위한 추모미사’ 참례자들이 화재 건물 앞에서 추모하고 있다. 소냐의집 제공

슬픈 기도

천호동 화재 희생자를 위한 추모의 글

-이해인 수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때

기쁘고 평화로워야 할 우리의 기도는

왜 이리 아프고 슬프고

어둡고 답답한가요, 주님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 날

느닷없이 뜨거운 불길 속에 희생당한

우리의 가엾은 자매들을

당신은 어찌하실 건가요?

살아서도 외롭고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하소연할 곳 없이

힘겹게 살아왔던 눈물 젖은 삶의 시간들

죽어서도 다시 한 번 죽어서 장례식조차 늦어진

슬픈 사람들을 슬프게 굽어보실 자비의 주님

이렇게 길 위에서 마지막 고별식을 치르는

우리의 가난한 기도에

길이신 당신께서 대답하여 주십시오

힘든 여정을 살아내느라

참 많이 수고했구나

나는 너희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당신의 넓은 품에 안아 주실거지요?

함께 울어 주실거지요?

바로 곁에 있으면서도

진정한 벗이나 가족이 되질 못하고

사랑으로 돌보지 못한 우리의 무관심과

오만한 편견과 독선의 잘못을 꾸짖어 주십시오

참으로 죄송합니다, 주님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해 상처 주고

돌팔매질을 하던 우리의 죄는

어떻게 보속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말로만 사랑을 외치고 선한 이웃이 되지 못해

용서를 빌 자격조차 없는

오늘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창문이 있어도 창밖으로 나올 수 없던 이들에게

우리는 창문이 되지 못했습니다

떠난 이들과 작별을 해야 하는 이 시간

우리의 언어는 힘이 없고

위로의 말도 빛을 잃어 슬픈 오늘

그래도 다시 기도해야겠지요

당신께서 우리의 집이 되시니

방황을 끝내고 돌아와야겠지요

당신께서 우리의 희망이시니

떠난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무언가 다시 선한 일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진정 당신이 계시기에 안심하고

우리는 고인들을 떠나 보내겠습니다

먼 길 가는데 외롭지 않게 함께 하여 주소서

미움도 학대도 구속도 차별도 없는

당신의 그 나라에서는 저들이

부디 행복해 질 수 있길 바랍니다

이제는 자유롭게 날아오르게 하소서

날마다 간절히 꿈꾸고 애타게 그리던

자유의 새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면 좋겠습니다

살아서 못 입은 가장 고운

행복의 비단옷을 차려입고

천상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으로

지상의 우리들을 향해

환히 웃어주면 좋겠습니다

오, 생명과 치유의 주님

한 번도 만난 일 없지만

기도 안에 가까운 가족이 된

이 땅의 천호동 희생자들이

모든 괴롬과 시름을 떨쳐버리고

지복의 나라에서 편히 쉬게 하소서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소서. 아-멘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