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최초로 한국서 사제품 받는 에리찌에·크리스티앙 부제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9-01-08 수정일 2019-01-09 발행일 2019-01-13 제 3128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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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의 경험으로 고향의 새 복음화 이끌 것”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수학
성소 품은 지 20여 년… 15일 서품식 
“한가족처럼 대해준 신자들에 감사”

1월 15일 사제 서품식을 앞두고 있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에리찌에(오른쪽)·크리스티앙 부제.

하느님이 좋았다. 그러다보니 그 모상대로 만들어진 사람들이 좋고 그 사람들을 돕고 싶어 ‘섬기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성소의 뜻을 품은 지 20여 년, 드디어 사제품을 받게 됐다. 게다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하 중아공)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교회에서 서품을 받게 됐다. 1월 15일 누구보다 큰 소리로 “네, 여기 있습니다”를 외칠 준비를 하고 있는 주인공,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수학한 폴로마요 잘루아 에리찌에 르두트(Polomayo Zaloua Heritier Redoute·33)와 앙바가 응두구아 크리스티앙 엑수페리(Angbaga Ndougoua Christian Exupery·32) 부제다.

중아공 신학대학이 잠시 운영을 중단하는 등의 문제가 없었다면 늦어도 13년 정도의 양성과정을 거치면 사제가 됐을 이들이었다. 무엇보다 언어도 문화도 완전히 낯선 타국에서 신학공부를 하는 녹록찮은 여정을 성실히 보냈다.

“힘든 만큼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사목적 시야를 넓히고 풍부한 경험을 쌓은 시간은 사제에겐 매우 큰 자산입니다.”

에리찌에와 크리스티앙 부제는 한 목소리로 “특히 아프리카와 유럽을 넘어서 아시아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 모두가 한 형제임을 체감하고 한국교회의 왕성한 사목활동을 경험한 것은, 사제생활의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에리찌에 부제는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새 복음화를 위한 소공동체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춰 석사 학위 논문을 썼다. 크리스티앙 부제도 중아공 전통 가정과 현대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비교, 보다 구체적인 가정 복음화 방안을 담은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다른 듯 하지만 둘의 사목방향은 매우 닮아 있다. 우선 이들은 공통적으로 꼭 실천하고 싶은 관심 사목분야로는 사회복지를 꼽았다. 또한 에리찌에 부제는 앞으로 중아공에서 사목활동을 할 때 사회복지와 함께 청소년사목에, 크리스티앙 부제는 가정사목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중아공에는 1894년 프랑스 사제들이 처음으로 가톨릭을 전파했고, 프랑스 식민 지배 등을 거치면서 전체 인구 대비 신자 비율이 60%를 넘어선 때도 있었다. 현재 중아공 복음화율은 약 40% 수준이지만 사회 안에서 가톨릭교회가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강한 편이다. 또한 비신자들 사이에서도 ‘가톨릭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보호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두 부제들은 이러한 현실에서 교회 내 신자들만이 아니라 중아공 사회 전반에서 교회의 역할이 잘 실현될 수 있도록 힘써 돕겠다는 뜻도 밝혔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는 섬기러 왔다’는 말씀이 어릴 때부터 마음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하느님께서 저를 선택하셨고 한국에서 교육을 시키셔서 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에리찌에 부제)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교회와 사회에 필요한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또한 신자들이 있기에 사제직분이 생긴 것임을 되새깁니다. 저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크리스티앙 부제)

두 부제는 고국에 내전뿐 아니라 교회 내부 문제까지 겹친 어려운 상황에서 해외 유학을 했다는 공통점뿐 아니라, 신앙심이 깊은 부모님 덕분에 사제성소의 길을 권유받은 것까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은 사제서품을 위해 한순간도 쉬지 않고 기도해온 부모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중아공 방기대교구에 진출해 선교활동을 펼치면서 현지인 사제양성 지원에 힘써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수녀들과 대구대교구 사제들의 도움에도 감사했다. 특히 “친아들처럼, 한가족처럼 대해주며 끝없이 기도해준 대구대교구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서품 때까지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중아공에도 새로운 복음화의 물결이 흐르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과 한 형제자매로 어울려 열린 마음으로 복음화에 노력하겠습니다. 서품성구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6)와 같이 하느님 앞에서 말할 수 있도록 말이죠.”(에리찌에 부제)

“이제부터 진짜 시작입니다.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32)는 말씀처럼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크리스티앙 부제)

에리찌에와 크리스티앙 부제는 1월 15일 서품식 후 한국에서는 각각 주교좌 계산성당과 반야월성당에서 첫 미사를, 중아공에서는 방기대교구 요한사도성당과 성베네딕토성당에서 각각 첫 미사를 집전한다. 이후 대구대교구 내에서 본당 사목 경험을 쌓은 후 중아공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