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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부끄러운 ‘표절천국’ 매체 탓도 커 / 김지영

김지영 (이냐시오) 전 경향신문 편집인
입력일 2019-01-08 수정일 2019-01-08 발행일 2019-01-13 제 312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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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⑧
남북 관계의 활성화와 함께 관련 보도도 넘치던 지난해 5월. 지상파인 MBC와 종편인 채널A, MBN이 같은 날 같은 내용의 북한관련 뉴스를 내보냈다. “주중 북한대사관이 풍계리 핵시설 파괴를 취재하러 오는 외부 기자들에게 방북취재 비자 발급비용으로 개인당 1만 불씩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풍계리 시설파괴는 북한 측으로서는 비핵화 협상 길목에서 내놓은 상징적 행사여서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런 만큼 위 방송들을 접한 시청자들은 “북한이 그 와중에도 얼마 되지 않은 수익에 집착하나” “큰 명분에 비해 너무 소아적인 처사”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조사결과 이들 방송은 취재도 하질 않고 이 기사를 써서 방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은 그 이틀 전 TV조선이 보도한 내용인데, 확인취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베꼈던 것이다. 그러면서 ‘TV조선’이라는 출처도 밝히지 않았다. 전형적인 표절 보도였다. (게다가 당초 TV조선 역시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도한 것으로 방통심의위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타언론사 보도에 대해, 확인취재는 물론 출처표명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도 지키지 않음으로써 여러모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큰 ‘방송사고’를 냈던 것이다.

표절이란 한마디로 ‘남의 지적재산’을 훔치는 행위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8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언론사와 언론인은 신문, 통신, 잡지 등 기타 정기간행물, 저작권 있는 출판물, 사진, 그림, 음악, 기타 시청각물의 내용을 표절해서는 안 되며 내용을 전재, 또는 인용할 때에는 그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면, 우리 보도매체들의 표절 현상은 심각하다. 그리고 일상적이다.

물론 언론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학계와 문화계 등 우리 사회 전반이 남의 것을 베껴다 쓰는 표절 행태에 익숙하다. 정부 고위인사 청문회 때면 으레 ‘논문표절’이 문제가 되고 심지어 이 때문에 “표절은 위장전입과 군면제, 부동산투기와 함께 고위 공무원이 되기 위한 필수덕목”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왔다.

선진외국에서 표절은 매우 심각한 범죄로 취급하고 있다. 표절이 확인되면 그에 대한 처벌도 엄청나 사회적으로 매장되다시피 한다. 그래서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의 논문표절 문제가 크게 불거졌을 당시 ‘흔하고도 처벌도 관대한’ 표절 풍토에 대해 한 해외언론은 “한국은 표절천국”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었다.

매체들의 표절행태는 그 전형적 방법이 타매체의 내용을 전부 또는 일부 인용하고도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이다. 대신 “한 언론 매체에 따르면” “한 주장에 따르면”이라는 등의 모호한 출처를 대거나 출처 없이 “~~알려졌다” “~~전해졌다”와 같은 피동형 종결어미로 처리하고 넘어간다.

사진물도 자주 표절의 대상이 되고 있다. 통신사가 제공한 사진이나 다른 매체의 사진을 출처 없이 게재하거나 심지어 자사 기자의 이름을 버젓이 달기도 한다.

다음은 한 가지 사례다.

스포츠서울과 일간스포츠는 지난해 6월 20일자 지면에 각각 「“머리 왜 달고 다니냐” 노소영 폭언-갑질 폭로 논란」제목의 기사와 「노소영 관장, 이혼소송 첫 공판 앞두고 ‘갑질’ 논란」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가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표절로 지목돼 주의 제재를 받았다. 두 신문은 그 전날 다른 신문이 단독 보도한 내용을 인용해 작성하고도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한 매체’라고만 밝혔다.

신문뿐 아니라 방송, 인터넷, 포털 등 모든 매체가 관련 윤리규정과 자율심의 기구를 두고 표절에 대해 사후 제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자율심의 규정이나 기구는 강제적 처벌규정이 약한 탓해 언제나 (다른 위반사항과 함께) 표절사례가 넘쳐난다. 피해매체들은 표절매체에 대해 ‘저작권법 위반’을 걸어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에 호소하기도 하지만 실상 이 방법은 여러모로 쉽지가 않다.

신문·방송과 같은 전통 매체뿐 아니라 크고 작은 인터넷 매체가 8000개(추산)에 이르는 지금, 출처도 대지 않고 매체들이 남의 콘텐츠를 베끼고, 가공하는 일은 다반사가 돼버렸다. 표절 상황만 보면 한국은 문명국가라고 내세울 수 없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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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이냐시오) 전 경향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