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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가정을 채우는 다섯 가지 양념 / 이진이

이진이 (헬레나·제1대리구 상현동본당)
입력일 2019-01-08 수정일 2019-01-08 발행일 2019-01-13 제 312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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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의 눈물
삶과 죽음이 결합된 공간인 가정에서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의 슬픔을 정화시킬 수 있는 가정의 네 번째 양념은 고춧가루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춧가루의 매운맛은 미뢰만으로 느낄 수 있는 맛과는 달리 자극에 의해서 느낄 수 있는 전달양식이 다른 맛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작년 여름, 저희 곁을 떠난 시어머니가 유난히 그리워지는 날엔 이 매운맛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저희 시어머니는 양치기 소녀였습니다. 오진으로 인해 폐가 한쪽밖에 없어서, 늘 호흡곤란과 각종 질환을 안고 사셨던 그분은, 달갑지 않은 응급상황과 자주 맞서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병원에서는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요.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털고 일어나는 시어머니는 아주 매력적인 양치기 소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많은 이들이 숙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죽음의 순간이 저희 시어머니에게도 다가왔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죽음 앞에선 양치기 소녀니까, 이번에도 잘 이겨내실 거라는 마음과 함께 병실에 들어갔습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의식을 잃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어머니를 보면서 당당함이 사라졌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최선을 다해 작고 힘없는 여인의 손과 발을 주물렀습니다. 차가워지는 환자의 손끝과 발끝을 어루만졌지요. 혈액이 퍼지게, 삶이 지속되게, 사람의 온기가 남을 수 있게….

어머니의 심장은 멈췄습니다.

시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시아버지와 통화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한 사람과의 이별은 남은 사람들에게 더 사랑하라는 표지가 됩니다. 못내 아쉽고 그립지만, 자연주기법을 실천하면서 얻게 된 깨달음 중 하나인, 아픔을 이겨내는 힘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자연주기법은 생식력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의 차원을 넘어 가정구성원의 정체성과 서로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흐름을 받아들이는 자연주기법을 실천하면서,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이고도 다양한 위기를 극복할 힘을 함께 얻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이진이 (헬레나·제1대리구 상현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