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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통미봉남에서 통남연미로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12-31 수정일 2019-01-02 발행일 2019-01-06 제 312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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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6일,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개성 판문역에서 있었다. 사실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는 이미 2002년에 연결됐으며, 2007년에는 개성공단을 향한 화물열차가 운행됐다. 2008년 11월, 이명박 정부 당시 연결된 철도의 열차 운행이 중단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착공식은 철도·도로의 현대화 공사를 향후 조건이 되는 대로 시작하자는 약속의 이벤트라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물론 현대화 공사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될 때 가능하다.

그런데 11월 20일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EAP)이 국제개발처(USAID) 아시아국과 함께 ‘동아시아 태평양지역 합동전략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에서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 정치, 경제적 압력을 강화하는 ‘최대의 압박’을 지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미국의 장기적인 목표로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된 비핵화’(FFID)를, 단기적인 목표로 ‘핵개발 동결,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 및 핵물질 생산 중단, 비핵화를 향한 초기 조처 확보’로 구분해 제시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비건 미 국무부 한반도 특별대표는 “미국 국민들이 지원 물품을 전달하고 북한을 여행하는 부분에 대해 재검토할 것”이라며 대북 인도 지원 확대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비건 대표의 보고를 받는 장면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북한과의 협상에서 진전이 이뤄지고 있고 김 위원장과의 다음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썼다. 늘 하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단기와 장기 목표를 구분한 보고서, 비건 대표의 유화적인 발언과 종합해 볼 때, 미국의 대북 협상 정책이 단계적 협상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조금 현실적이고 유연하게 변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북한의 대응, 즉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중요하다.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대로 김정은 위원장이 방남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상응조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북한의 카드에 대해 우리와 진지하게 협의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것이 북미 협상의 교착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과거 한국을 제쳐두고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이 북한의 노선이었다면, 지금은 서울을 통해 워싱턴과 대화하는 ‘통남연미’(通南連美)로 노선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북이 협력해 북미 대화를 진전시켜 한반도 평화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에제 37,22)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던 예언자 에제키엘의 길이 될 것이다.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